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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 현대 음악
작성자 grimy19951995
작성일자 2024-04-22
조회수 65

한국 현대 음악, 정체성과 사조(思潮)의 필요성

 

/ 김규현(한국음악비평가협회 회장, 작곡가,

 

여는 말

한국 창작 음악사를 국내 최초의 가곡인 홍난파(1897-1941)봉선화(1920)를 기준으로 할 때 금년(2023)103년이 된다. ‘봉선화는 오스트리아의 제 2 비엔나 악파 (Second viennese school) 중에 한 사람인 A. Schoenberg(1874-1951)가 창안한 12음 기법(twelve tone technique)이론보다도 몇 년 앞서서 작곡됐다. 이런 면에서 봉선화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 가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국민 동요이고 애창곡이라고 할 수 있는 윤극영(1903-1988)반달(1924)도 오스트리아의 한 곳에서 12음 기법으로 만들어진 근대음악(modern music) 사조(trend of music)의 하나인 표현주의 음악(__Expression__ music)이 생성되었을 때 반달이 태어난 것도 자랑스럽다. 이런 과거의 자부심과 열악한 국내 사정에도 불구하고 100여년 후인 오늘날 국내 창작 음악계는 103년 사에 부합하듯이 세계적이라고 할 정도로 급발전했다. 일부 몇 몇 작곡가들은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어 있다. 윤이상(1917-1995), 박영희(1945-), 나인용(1936-), 강석희(1934-2020), 이만방(1945-), 진은숙(1961-) 등이 그들이다. 이외의 많은 작곡가들은 세계 창작 음악계의 반열에 서있고 수준 높은 작품으로 세계 창작 음악계를 주름 잡고 있기도 하다. 이런 국내 창작 음악계를 몇 가지로 나누어서 들여다 보았다.

1) 한국적 창작 음악의 시도와 면모, 2) 한국적 현대 음악의 양상과 정체성, 3) 한국 창작 음악의 국제화와 세계화 그리고 사조의 필요성 등 한 세기를 들여다 본 것이 그 내용이다.

 

한국적 창작 음악의 시도와 면모

과거 6,70년대의 창작 경향은 조성 음악과 함께 국악의 민속 음악 작품들이 주 소재가 되었고 국악 양식이나 양상이 작품의 기본 틀이 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한국 창작 음악의 창출이

우선시됐다. 그러나 이 반면에 국악 소재를 양악적인 작곡 기법으로 재구성한다든가. 국악 소재와 절충을 통해서 소위 한국적인 현대 음악 창출을 한 작곡가들도 꽤 많이 등장했다. 나운영(1922-1994), 나인용, 박재열(1930-2010) 등 주로 연세대 음대 작곡과 교수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제자들이 뒤를 이었다. 이들 작업의 주안점은 국악 소재를 차용하더라도 시대성과 현대 음악의 작곡 기법과 양상을 보여준 신음악(New Music) 창출이었다. 나인용의 인성과 실내악을 위한 몽(1978)과 합창곡 가시리(1978), 그리고 김정길의 8주자를 위한 추초문(1979)과 강석희의 인성과 5인의 주자를 위한 부루(1976)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7,80년대의 창작은 한국적인 현대 음악 양상이 줄을 이루었고 이것은 창작 음악계의 큰 흐름이 되었다.

필자가 작품들을 다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 시대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국내 창작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이때 당시 작품들 양상은 일정한 사조라기보다는 작곡가들의 작곡 취향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한국적 표현 접근이 주를 이루었다. 그때 당시 진보적인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오숙자(1941-), 나인용, 이만방, 김정길(1934-2010), 최인찬(1923-2009), 최동선(1942-), 박재열(1930-2010)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들의 한국적인 창작 음악의 시도와 면모는 아쉽게도 국내를 대표할만한 사조를 낳지 못했고 한국적 창작 음악의 단면을 다양하게 보여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때 당시 나운영의 창작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토착화 현대화의 논리는 높이 평가할만 했다. 이때 당시 현대음악 작품들의 양상(phase)은 예술성있는 표현 접근보다도 직설적인 표현 접근이 많았고 완벽하게 짜여져 있는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실험성이나 아방가르드 식의 작업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국내 창작곡 경향은 소위 한국적인 표현 접근 방식과 국악과 양악의 절충식의 창작 면모였다. 재독 작곡가 윤이상의 1966년 작인 대편성 관현악을 위한 예악1978년 작인 대편성 관현악을 위한 무용적 환상 무악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위 두 곡 이후 80년대는 예술성과 미학이 전제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그의 다섯 개의 교향곡(1982-1987)관현악 곡을 위한 전설 신라등이 그것이다. 8.90년대에는 국내 일부 작곡가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작품으로 세계 창작 음악사를 써가는 일도 있었다. 나인용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태(1991), 강석희의 대관현악을 위한 긴 노래(1980), 이만방의 현악 4중주를 위한 아미타(1990) 등이 그 작가와 작품들이다.

 

한국적 현대음악의 양상과 정체성

요즘 국내 현대음악작품들은 다양하고 그 작곡기법도 각각 작가마다 다르다. 국악과 접목한 현대곡을 쓰는가하면 순수 양악적인 현대곡도 쓰고 있다. 그러나 schoenberg가 창안한 12음기법을 가지고 곡을 쓰는 작곡가는 볼수가 없다. 스스로 음소제(tone material)를 만들어 작곡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세계의 작곡가들의 동일한 수준의 작곡력을 구사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세대를 초월해서 한국현대음악을 쓰려는 의식구조를 갖고 있고 8,90%가 의식적으로 현대곡을 써서 발표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한국창작계다.

필자가 언급하려는 한국작품은 시대성과 한국성 그리고 현대성이 전제된 21세기와 부합된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한국현대음악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아래 거론된 작품들은 세계창작음악계에 내놓아도 떨어지지 않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그야말로 한국현대음악의 걸작이다. 강석희 대관현악을 위한 달하(1978), 인성과 5인 주자를 위한 부루(1976), 나인용 관현악을 위한 태(1991), 인성과 실내악을 위한 몽()(1978), 피아노 5중주를 위한 혼맥(2020), 이영자 피아노소나타 열과 정(1985), 피아노와 현을 위한 합주적 장 나의 조국, 이영조 오페라 황진이, 백병동 3개 오보에와 관현악을 위한 진혼(1974), 현악4중주 2(1977), 이만방 현악4중주 아미타(1990), 관현악을 위한 무당, 이건용 E음으로부터의 전주곡(1981), 임주섭 교향곡 제1번 동해(2022), 최인찬 이태백시에 의한 3정경(1971), 김규동 현악4중주를 위한 환영의 순간, 이혜성 consolation rest of life for string quartet등 위 작품들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불멸의 곡들이라고 할수 있다.

6,70년대부터 오늘날 21세기까지 작업양상은 한국적인 작업절충식 작업여과된 양악적 작업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작업 태도 등이 그 진화된 작업 형태다. 과거 20세기는 세계의 많은 작곡가들이 작품을 통해서 사조(trend of music)를 낳았고 그 사조들은 세계 음악사의 큰 흐름(주류)이 되어 있다.

그 예는 프랑스 작곡가 Debussy(1862-1918)impressionism, 오스트리아 작곡가 Schoenberg(1984-1951)__expression__ism, 프랑스 작곡가 Pierre schaeffer(1910-1984)musique concrete, 러시아 작곡가 Stravinsky(1882-1971)neoclassicismprimitivism, 1951년에 독일 작곡가 Eimert herbert(1897-1970)Stockhausen(1928-2007)electronic music, John cage(1912-1992)aleatory musicindeterminacy를 낳고, 미국작곡가 Philip glass(1937-)Steve reich(1936-)60년대에 minimal music을 탄생시켜 70년대 붐을 이루었다. 이들은 20세기 한 세대 동안에 사조를 낳았고 이 사조는 세계음악사에 큰 획을 그었고 역사를 썼다.

한국양악사가 138년이고 창작음악사는 103년이 되는 작금의 국내 창작음악계는 세계적인 작곡가들이 많으면서도 세계음악계가 인정할수 있는 사조를 내놓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오늘날 국내 작곡가들의 관심사는 정체성수립을 통한 한국현대음악 작품쓰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의식은 많은 한국작품들을 낳았고 발표도 했다. 최근에 이들의 작품들은 세계 창작음악 시장에서 출판도 하고 발표도 하는 글로벌 작품들이 되어가고 있다.

강석희의 대관현악을 위한 달하(1978)인성과 5인을 위한 부루(1976), 나인용의 혼맥(2020), 관현악을 위한 태(1991), 이건용(1947-)상주 모심기 노래에 의한 변주곡(1997), 이영조(1943)의 오페라 황진이(1999), 이만방 현악4중주 아미타(1990) 등이 그 작품들이다.

 

한국 창작음악의 국제화와 세계화 그리고 사조의 필요성

국내 작곡가들 중에 일부는 국제화 내지 세계화를 해간 사람도 있다. 재독작곡가 박영희, 진은숙, 윤이상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독일과 이탈리아 출판사들과 저작료를 받으면서 악보를 출간하고 있다. 심지어 음악사전이나 음악역사 서적에도 등재되어 있다. 오늘날 국내의 많은 현대음악작곡가들은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modern musik nach 1945에 등재되어 있다. 오래전에 김영삼 정부시절에 세계화와 국제화를 정부차원에서 정책적으로 권장한 일이 있었다. 심지어 문화부장관(이어령)88올림픽 때 운동장에서 굴렁쇠를 돌리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캐치프래이즈를 내세워 국민들에게 부각시킨 일이 있다. 음악작품에 있어서 세계화는 세계인들이 Mozart 음악이나 Beethoven 음악을 듣고 즐기듯이 한국창작음악도 세계인들이 듣고 즐기게 하는 것이다. 윤이상 음악은 독일인들에게 접근성이 수월해 듣고 즐긴다. 이렇게해서 세계화를 해가는 것이다. Mozart 음악과 Beethoven 음악도 과거 250여년 전에는 우리가 세계화 하듯이 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국제화도 우리나라 김치를 국제화하듯 하면 될 것이다. 김치는 어느 나라를 가도 살 수 있고 먹을수도 있다고 한다, 과거 90년대 윤이상 음악이 국제화되어가고 세계화되어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청중들이 부담없이 들을수 있는 보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비록 근현대음악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국내음악작품들은 국제화를 해도 손색이 없고 세계화를 해도 국제수준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얼마든지 가능성이 높다. 음악작품은 미술작품과는 달리 연주를 거쳐서 결과가 나올수 있는 예술작품이라 연주는 필연적인 과정이고 관건이다.

러시아의 악단이나 연주자들이 내한공연을 할 때면 프로그램 내용 전부라고 할 정도로 자국의 음악작품들을 연주한다. 이것이 국제화와 세계화를 하는 좋은 방법이다. 작품을 세계화와 국제화를 하는데 있어서 연주단체나 연주자들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바늘과 실의 관계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몇 년전에 경기필이 독일투어콘서트(지휘 성시연)를 한 일이 있었다. 윤이상의 대편성 관현악을 위한 예악대편성 관현악을 위한 무용적 환상무악을 연주했다. 지방악단이 독일가서 국제화와 세계화를 한 것이다. 독일청중들의 반응이 자국의 작곡가들의 음악이상으로 기립박수도 쳤다. 국내음악작품 중에서 그나마 국제화와 세계화가 잘된 곡은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을 들수 있겠다. 이곡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 연주해도 한국노래라는 것을 알고 있다. 미국교회의 찬송가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한국인들이 가는 곳마다 아리랑을 부르니 자동적으로 국제화와 세계화가 된 것이다. 이제는 한국음악작품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연주자들과 연주단체가 국내작품연주를 통해서 국제화와 세계화를 만들어 가면 된다. 과거 세월호사건 당시 국내 오케스트라들은 영국작곡가 Elgar(1857-1934)variation enigma for orchestra(1898-1899)에 나오는 nimrod를 음악회 전후에 연주한 일이 있었다. 이 곡은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데 세월호사건으로 국제화가 된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연주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야 한다. 외국연주단체나 연주자들을 초청하는 기획사나 신문사 등은 외국연주자나 단체들에게 정책적으로 한국음악작품을 연주하게 해서 국내작품들을 세계화하는 방법도 해볼만하다. 국내작품들이 모차르트나 베토벤 음악처럼 세계연주회장에서 연주되고 즐기도록 연주단체나 연주자들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닫는말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들은 한국창작음악의 한 세기를 들여다본 것에 불과하다. 초창기 작품들의 양상과 그 주안점을 들여다보았고 한국창작음악작품의 면모도 점검해 보았다. 앞에서 언급한 많은 작품명들은 세계 작곡계에 내놓아도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 작품들을 한번에 세계작곡시장에 내어놓는다면 세계의 작곡가들이 아마 놀라서 자빠질 것이다. 그리고 한국작곡가들을 다시 볼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사조(思潮)가 없다는 점이다. 국력이 약해서 그런건 아닐 것이다.

후기 낭만시대의 독일작곡가 Wagner(1813-1883)의 오페라와 대칭되는 musik drama 양식을 낳아 세계음악사에 역사를 썼다.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도 민족음악이 풍부하고 그 양상도 다양해서 Neo nationalism in music이 나올법한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창작음악계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봉선화반달로 시작된 창작음악사로부터 세계적인 양식인 컴퓨터음악까지 세계음악사에 논의된 모든 음악을 커버하고 있는 음악의 선진국나라다. 이런 면에서 한국음악사조는 이미 나왔어야 했다. 이제는 작곡가들이 주저하지 말고 윤이상, 박영희 등이 했듯이 작품의 국제화와 세계화를 해가야 한다. 그리고 사조도 만들어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한 세기를 들여다보면서 오늘날의 국내창작음악계는 저력이 있고 국제화와 세계화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앞으로 작곡계와 작곡가들이 할 일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사조를 만드는 일이고 연주자들과 협업을 통해서 작품의 국제화와 세계화를 해가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창작현대음악 사조를 통해서 세계음악사에 큰 획을 긋고 역사를 써가는 일을 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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