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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음악의 비평적 두 논제
[창작교회음악과 타악기 연주회]
작성 : musicnews24   2014-03-10 11:14    조회 : 658    추천 : 0   

현장음악의 비평적 두 논제

-창작교회음악과 타악기 연주회-

/ 김규현(본지주필, 총회신대원 교수, 한국음악비평가협회 회장)

 

1. 타악기 음악의 진면모를 보여준 신명 넘친 음악회

-서울 타악기 앙상블 제 11회 정기연주회-

서울 타악기 앙상블(음악감독 박광서) 11회 정기 연주회(1215일 한예종 KNUA)를 들었다. 외국 근,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 6곡과 국내작곡가의 작품 1곡 등 7곡이 연주됐다. 타악기 연주회는 일반적으로 다른 목, , , 건 등의 악기 연주회와는 다르게 리듬과 다이너믹에 더 많은 음악적 비중과 표현접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듣기가 즐겁고 신명이 난다. 특히 독주보다는 앙상블 연주가 더욱 그렇다. 이번 서울 타악기 앙상블 연주회는 이런 감흥을 더욱 많이 갖게 했다. 의미 있는 알찬 선곡과 의도된 연주회는 품격이 높아 보였고 서울 타악기 앙상블의 위상을 한층 업그레이드 된 면모를 보여 준 우수한 연주회였다. 특히 근, 현대 타악기 음악들을 다양하게 조명해서 내용접근을 한 것은 높이 살만했다. 프랑스의 졸리베와 드뷔시, 미국의 존 케이지와 크리스터퍼 루즈, 일본의 미노루 미끼 그리고 국내 김신웅(Percussion Quartet Rhyme) 등이 그것이다. 편성과 작품양식이 달라서 다양한 타악기 음악을 맛 볼 수 있어 좋은 자리이기도 했다. 모든 음악작품들이 유기적인 구조로 작곡되어 있듯이 연주도 그 구조적인 측면접근은 필수적이다. 이번 서울 타악기 앙상블은 그 측면접근을 설득력 있게 잘했다. 즉 치밀한 연주구도와 해석논리가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한 것이 그것이다. 특히 일본 작곡가 미노루 미끼의 Marimba spiritual연주는 이점을 잘 보여 주었는데 마림바 협연을 한 심선민의 연주논리는 우수해 보였고 합리적이었다. 마지막 순서로 전체단원들이 연주한 Christopher RouseBonham(드럼 독주 차준호) 연주는 음악회의 백미(白眉)였고 유기적인 표현접근과 음악적인 연계성 있는 연주접근도 최고의 음악을 만들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어느 악기보다도 다이너믹 처리의 비중이 지대한 타악기 연주는 그 설정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번 연주가 작품구성이나 구조에 따른 다이너믹 설정을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접근을 구체화 시켰더라면 더욱 좋을 성 싶었다. 그러나 이번 서울 타악기 앙상블 정기연주회는 지휘자 박광서의 치밀한 해석이 전제된 살만한 좋은 자리였다. , 현대 타악기 음악의 흐름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고 흔히 들을 수 없는 타악기 음악의 진면모를 듣고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단원들의 열린 사고의 융합된 연주는 그 하모니가 교육적이었고 감동을 더욱 준 살만한 자리였다. 음악감독 박광서의 열린 연주모습도 감동적인 자리였다. 과거 학생이었던 젊은 작곡가(김신웅)에게 작품을 위촉해서 직접 지휘해 음악을 만드는 모습이 그것인데 보기가 좋았다. 서울 타악기 앙상블이 청중들과 좀 더 친화력 있는 앙상블이 될 필요가 있다. 연주내용의 양면성을 갖는 일이다. 즉 클래식(古樂)과 대중성의 양립 된 프로그램 개발이 그것이다. 그러나 클래식을 등한시해서는 앙상블 품격이 떨어질 수가 있다. 이번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은 적당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음악회라고 할 수 있겠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아카데믹해서 살만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감동과 기대감을 준 우수한 연주회였고 단원 모두가 진솔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음악을 끌어내어 만든 설득력 있는 매우 우수한 연주회였다고 할 수 있겠다.

 

2. 현장 창작성가는 변화해야 한다

-토론논제-

요즘 발표된 창작성가를 분석해 보면 성가 작곡가들의 용기와 의욕이 대단한 것 같다. 과거(1960~1980년대)에 비해서 창작곡의 양도 수입된 외국곡의 양과 맞먹을 정도로 그 숫자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문제는 그 양에 비해서 질 높은 창작품이 별로 없다는데 있다. 외국곡들과 경쟁력을 갖고 있는 곡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심지어 어떤 곡은 외국곡을 표절했거나 그대로 흉내를 낸 것도 부지기수다. 성가작품은 쉽고 보편성과 편이성을 갖고 있어야 된다는 그릇된 사고와 편견으로 인해 작품성과 예술성이 떨어진 것들이 많다. 교회음악의 양식과 그 기능에 따라서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편의주의나 보편성 사고 때문에 창작성가가 획일화되는 현상을 경계해야만 한다. 교회음악 역사를 보면 시대변화에 따라서 상당히 많은 양식변화가 있었고 그 양식은 교회음악은 물론 세속음악의 발원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성가들이 세속작품에 밀리고 가려서 세속음악의 부속품 같은 조재로 전락해가는 기분을 갖게 하고 있다. 특히 국내 교회음악 창작계가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쉽고 편의성 있는 성가작품만을 요구하는 일부 교회음악출판사들의 상업주의와 전근대적인 사고도 발전을 가로막는 일을 하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성가대 수준은 출판사 관계자들과 일부 성가작곡가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이 수준이 낮은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작품을 어렵게 써야 수준이 높은 곡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완성도 높은 창작예술 작품성을 갖추고 있느냐다. 그런데 국내 성가작품(찬송가, 성가독창곡, 합창, 칸타타 등)들을 보면 창의성이 결여된 것들이 대부분이고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획일화된 곡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선율작업이나 화성적용 그리고 가사의 리듬처리 정확성 등이 서툴고 음악기초이론이 전제 안 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창작교회 음악계가 발전하려면 작곡가들의 의식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창작음악을 붕어빵 찍어 내듯한 획일화된 작곡만 해서는 발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다작이나 다편곡만이 발전의 해결책은 결코 아니다. 창의성 없는 다작은 시간과 체력의 낭비이다. 오늘날 국내 창작곡들이 연주가 안돼서 버려지는 졸작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다. 교회음악작곡가 모임들의 성가작품발표회를 가보면 너무나 많은 실망을 주고 있다. 작품이 구태의연하고 창의적이지 못해 작품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악기나 컴퓨터 도움으로 겨우 선율을 써 가지고 기초 화성풀이 하듯 한 성가 작곡행태는 올바른 창작법이 아니다. 음악이론과 논리성이 전제된 전문성 있는 창작을 해야 한다. 국내 창작교회음악계는 창작음악 90여년이 됐기에 변해야 한다. 외국곡 모방이나 표절할 때도 지났다. 그런데 현재의 창작곡 모습은 어떤가. 자기 작품 모방과 상식적인 창작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창피하고 유치한 창작곡을 내놓아 발표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자신의 곡이 설익은 습작 수준인 것도 인지하지 못한 작곡가도 있다. 어쩌다 곡 하나가 히트했다고 해서 작곡가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최첨단 지식과 테크닉이 구사되고 있는 시대가 오늘날이다. 편의주의와 보편성만을 강조하고 감각적이고 가벼운 실용주의 창작에 집착하는 것도 비성서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외국곡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작금에 외국곡과 경쟁력이 없는 수준미달의 비창의적인 곡만 쓴다면 허공을 향한 헛발질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성가작곡가들은 의식전환이 필요하고 창작의식과 태도가 변해야 한다. 졸작을 써서 발표하면서도 하나님께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작품 숫자 채우기 작곡만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품 숫자의 많고 적음이 작곡가의 평가기준이 될 수는 없다. 작품성과 창의성, 시대성 그리고 예술성이 평가기준이 되어야 한다. 21세기 창작성가는 과거의 것과는 반드시 달라야 한다. 시대성을 가져야 될 것이고 민족성과 작가의 개성을 가진 창의성 있는 성가작품이 만들어져야 한다. 물론 예술성과 작품성도 겸비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고 연주단체들이 높은 연주력을 갖추고 있는데 편의성이나 외국의 곡만을 모방하며 구태의연하게 정체되어 있어서는 발전할 수가 없다. 창작성가는 시대발전에 걸맞게 변해야 그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