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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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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순교자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20-06-11 15:20
창작오페라 behind story ③
오페라 <순교자>(The Martyred) 회고담
글/ 조문양(작곡자)

오페라의 태동
오페라 <순교자>는 삼육대학 개교 95주년과 음악학과 개설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작곡되었다. 단순한 예술행사만의 뜻을 가진 오페라가 아니라 대학과 학과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본내용의 결정은 쉽지 않았다. 애국적이며 삼육대학 설립 이념에 맞는 신앙적인 내용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고심하는 중, 하루는 교내 도서관 앞을 지나며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최태현 목사의 사진과 함께 약력이 기록되어 있는 기념동판을 보았는데 그 순간 <순교자 최태현>의 일대기를 오페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교자 최태현목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한국연합회 회장이었으며, 삼육대학 이사장으로 일제 강점말기에 신사참배와 교회를 폐쇄하라는 일제의 명령에 항거하다가 체포되어 종로경찰서에서 구타당하여 목숨을 잃은 순교자이다.
대본(libretto) 집필자는 남대극교수이다. 서울대와 동 대학 대학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시인이며 저술가며 신학박사인 그는 수많은 저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대본내용이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사실에 입각한 자료 수집을 위하여 상당한 문헌연구와 사건목격자들과 순교자의 직계 후손(미국 거주)들과의 인터뷰를 거쳤다고 했다. 집필기간은 1999년 5월부터 2001년 1월 말이었다. 작곡기간은 2001년 2월부터 그 해 7월까지 6개월이었다. 공연연습은 그 해 3월 초부터 시작되었다. 최초의 대본은 전 7막의 방대한 서사시였으나 작곡과정에서 4막으로 축소 조정되었다.
작곡과 연습이 병행된 8개월
오페라 공연은 음악과 개설 20주년 기념음악회이기 때문에 미루고나 취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화살은 이미 목표지점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먼저 내가 믿는 나의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그리고 오선지 노트 첫 페이지 오페라의 첫 음표가 그려진 때는 2001년 2월 초였다. 아침이 열리는 순교자 최태현 목사의 집 거실, 자녀들과 함께 드리는 가족예배 장면을 노래하는 이중창이 있는 합창곡이다. 처음에는 연필과 종이를 사용하여 곡을 쓴 후 컴퓨터에서 정사했으나 곧 직접 컴퓨터(Encore) 작업으로 전환했다. 작곡어법은 후기 낭만주의 기법을 택했는데, 이는 오페라 관객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3월 초 개강 첫 합창시간에 오페라 연습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악곡들은 작곡되는 즉시 연습에 들어갔다. 한 개의 악곡이 작곡되면 즉시 연습에 들어가는 동일한 작업이 1학기 내내 반복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한 번 작곡된 곡은 검토 수정 보완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성곡으로 확정되곤 했다. 오페라 <순교자>는 성체가 형성되기도 전에 지체가 먼저 태어나서 세상 빛을 보게 된 진기한 탄생비화를 가지게 되었다. 피아노반주의 총보는 2001년 7월 25일에 출판 되었다.
대본축소 작업
대본이 7막에서 4막으로 축소되었다. 어떤 작가도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자신의 문학작품을 문학문외한에게 수정축소작업은 맡기지 아니한다. 그것도 문헌으로 남겨 질 오페라 대본을 말이다. 집필자의 너그러운 양해 하에 필자가 작곡을 하면서 대본을 수정하여 4막으로 축소했다. 대본을 수정 축소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문학적 요소의 상당부분이 파손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완성된 오페라를 받아 본 집필자인 남대극교수는 변경된 내용에 대하여 수고에 대한 감사의 표시 이외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문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었던 기간
그 해 1학기는 문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정규강의시간을 단축하거나 결강 없이 이행하면서 오페라 작곡을 강행했기 때문이었다. 오페라와 같은 대작의 악곡작곡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인데 집중하려면 작곡 이외의 집무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케스트라는 9월 정기연주회와 오페라 준비로, 성악파트는 성악파트대로 붐볐다. 최초의 악보가 피아노 악보였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로 편곡해야 되는데 내가 너무 바빠서 동료 교수에게 편곡을 부탁했었지만 내 작품은 내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편곡했다. 그러다보니 어떤 때는 연습시간 직전에야 겨우 편곡을 끝냈으므로 악보를 복사할 때에 생긴 따뜻한 온기가 식기 전에 오케스트라 연습장으로 가지고 가는 때도 있었다. 지휘자는 단원들 앞서 악보를 읽고 연습해 들어가야 함은 상식인데 이 과정에서 지휘자 역시 단원들과 같은 시간에 악보를 받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최종으로 작곡된 <서곡>이 완성된 때는 공연 2주 전인 9월 중순이다.
컴퓨터 모니터의 오선지가 새까맣게 변했던 순간들
예술 활동은 그 자체가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창작과정은 즐겁고 또 즐거운 순간들이다. 그런데 필자는 오페라 <순교자>를 작곡하면서 암담한 절망에 빠졌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악상이 떠올라야 하는데 머릿속이 텅 비면서 아무 것도 창출해 낼 수 없었던 순간도 여러 번 겪었다. 학생 시절, 주 1회 있었던 작곡레슨 시간은 왜 그리 빨리 다가왔던지. 차일피일 미루던 과제를 벼락치기로 해결하려고 머리를 짜 내어도 악상이 떠오르지 않았을 때의 그 절망감, 그 경험을 오페라 작곡과정에서 다시 했던 것이다. 깨알처럼 박혀 있는 대본 속의 낱말들, 어느 세월에 선율을 입힌단 말이냐? 도망가고 싶은 그 순간순간마다 나는 머리 숙여 기도드렸고, 그리고 가사에 알맞은 선율들을 모니터 화면의 오선지를 채워 나갔다. 작곡과정에서 기도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오페라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순교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정 종교에 대한 나의 고백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병행된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정기공연
이처럼 급박하게 진행된 오페라 공연은 여름방학을 반납했던 것 이외에는 학교 정규강의 시간을 침해하지 않고 진행되었다. 성악파트도 수고했지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9월에 예정된 오케스트라 정기공연을 위한 연습과 오페라를 위한 연습이 겹치면서 많은 수고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은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많은 것이었기에 보람된 것이 되었다. 다시 그 해 여름방학을 회상해 본다. 방학동안 대강당 1층의 음악과 연습실은 오페라 연습하는 열기로 가득 찼다. 냉방시설은 물론 선풍기 한 대도 없었던 연습실과 대강당주변은 오페라의 합창과 독창 음향으로 휩싸였다. 활짝 열린 문으로 새어나오는 음악소리는 아름드리나무 숲속의 한산한 여름방학 교정을 가득 채웠었다. 연습실의 열린 문어귀에서 연습과정을 바라보며 자리를 뜨지 못했던 오고 가던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연주회에서의 아찔했던 순간
오페라는 재학생 1팀, 동문 1팀 교수 1팀으로 총 4회 공연했다. 동문 팀이 연주하는 날에 뜻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베이스역의 독창자가 연주 도중 약 100여 마디를 빼어 버린 채 아리아를 부르는 초미의 비상사태가 일어났다. 그 순간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는 일제히 멈추었다. 그 순간 단 한 개의 악기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베이스 독창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되었고 멈추었던 오케스트라 연주도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시작되었다. 물론 청중들은 연주 도중에 일어난 잠깐의 사고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체 잘 지나갔다. 지휘자는 조대명 교수였다. 오스트리아 빈 시립음악대학에서 지휘와 작곡을 전공하고 귀국한 신인이었던 그는 이러한 돌발적인 사고를 어떻게 대치했는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페라 연주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사고 중의 하나가 독창자들이 악보대로 노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상되는 몇 개의 사고에 대한 대처방법을 미리 연습해 두었었는데 그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사고 순간에 약속되어 있었던 지휘자의 손가락 신호에 따라 100 여 마디를 뛰어 넘어 노래하는 베이스 독창자에 맞추어 연주를 마무리 했던 것이다. 지휘자의 기지도 탁월하지만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대단한 연주집중도에도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성공적인 오페라 공연
오페라는 2001년 10월 10일부터 12에 걸쳐 3일 동안 예정대로 공연되었다. 첫날부터 공연은 대 성공을 거두었는데 3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삼육대 대강당의 전 좌석이 가득 찼었다. 공연 2일, 3일 모두 3천여 명의 청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공적인 공연을 마쳤다.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앵콜공연 요청이 들어왔다. 그 주간토요일 저녁에 앵콜 공연을 가졌다. 그 날도 너무 많은 청중들로 인하여 강당복도마다 임시 의자를 설치했는데 그래도 남는 청중들은 강당 로비의 텔레비전모니터를 시청하는 진풍경이 일어나기도 했다. 단 기간에 만들어 졌고 터무니없이 짧은 연습으로 공연되었지만 이러한 결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오페라 내용이 하나님의 섭리로 진행되는 역사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