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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한민족 역사 오페라 창작기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19-08-23 15:00
창작오페라 behind story ②
한민족 역사오페라 <단군왕검> 창작기
글/ 심진섭

우리는 스스로를 ‘배달민족’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단군신화’는 잘 알아도 “단군조선”은 거의 모르고 그저 ‘그런 설이 있더라’ 하며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2007년경이다. 2003년에 필자가 그동안 해왔던 음악이 미래의 음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자연음악을 찾아보겠다고 하며 그때까지 평생 해왔던 음악의 모든 지식을 무(無)로하고 근본적인 음악의 근원을 다시 찾아보겠다고 한 이후 2005년에 새로운 자연화성체계인 {5도화성론}의 기초를 찾아낸 후 의욕적으로 가곡과 합창곡들과 약간의 기악곡 들을 발표한지 3년째 되던 해이다.
지인 작곡가가 관현악곡을 발표하게 되어 그 초대권을 전달하러 갔는데 처음만난 그분으로부터 우리민족의 역사오페라를 작곡해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그에 관련한 책 4권을 받았는데 우리민족의 고대역사에 관한 책들이었다. 집에 와서 살펴보니 내용이 황당할 정도로 믿어지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이름과 관직명, 지명 등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얼마 전까지 방영하다 잠시 휴식 중인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를 처음보신 분들이 느꼈을 그런 것인데, 책으로만 보는 그 내용은 그 명칭이 사람이름인지 지명인지 관직명인지 조차 모르다보니 글자만 읽을 뿐 내용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암호로 쓰인 책과 같았다. 다행히 4권의 책들 중에는 그림이 많은 책이 있어 미세하나마 조금씩 내용을 알게 되었고 많은 어려움을 참고 4권의 책들을 읽으며 내가 느낀 것은 그 내용이 ‘황당무계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민족의 고대역사책인데 그 내용이 황당하니 ‘진실’이 궁금해졌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수도 없이 많은 내용의 고대역사가 나와 있었고 이제는 명칭들이 처음보다는 익숙해져서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그 내용들이 그동안 내가 배우고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혼란에 빠져버렸다.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내용들도 서로 다른 내용들이 많아 진실한 역사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내가 알던 우리민족의 역사는 일제가 왜곡하여 우리에게 주입시킨, 역사가 아닌 허구였다!!!’
그것을 ‘식민사관’이라 부르는데 그 왜곡된 역사가 지금까지도 학교에서 그대로 교육되고 있는 것이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일제 때 우리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운용했던 일제의 관청 ‘조선사편수회’가 우리민족의 역사책을 자기네 입맛에 맞게 새로 만들어 우리에게 교육했고, 그 때 참여했던 한국인 친일역사학자들이 해방 후에도 대학교수가 되어 역사교육강단을 점령하였으므로 왜곡된 그 내용들이 지금까지도 진실의 탈을 쓰고 교육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뼛속까지 사무치는 울분을 참아가며 역사공부에 매달렸다. 인터넷은 물론 서점에도 찾아보고 여러 가지 정보를 얻게 되었는데 결정적인 책은 ‘환단고기’였다. 우리의 고대역사책을 간직해온 우리 역사학자들이 일제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 책들이 깊이 숨겨진 이후 해방 후에도 수십 년이나 더 지나서 드디어 세상에 다시 나온 것이다. 그것도 쉬운 해설본과 함께!

나는 진실한 우리민족의 고대역사를 오페라로 만들기로 했다. 우선 대본이 필요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작가를 만나기도 했으나 환단고기의 내용 자체를 위서(僞書)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을 들여왔던 친구 작가(중학교 때부터 절친인데 천재적인 문재를 지녀 그 동안 필자의 여러 곡의 가사를 쓴 적이 있고, 오래전에 4권의 책을 모두 주고 대본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결과가 없었음)에게 또 다시 적극적으로 설득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전략을 짰다.
그 친구와 함께 중국여행을 가는 것이다. 여행 중에 자연스런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해서였다. 환단고기 책을 사서 친구에게 보냈고, 나는 당연히 환단고기 책을 여행 짐에 넣었다. (그 책은 1400쪽이 넘어 두껍고 무거웠다.)
여행 중 저녁 한가한 시간에 기회를 보아 환단고기 책을 꺼내며 역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일언지하 그에 관한 말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완강한 거절의 말을 들었고 나는 그냥 책을 가방에 넣어야만 했다.

아무소득없이 중국여행에서 돌아온 후 어느 정도 자포자기 상태에서 일단 내가 대본을 써보기로 하고 쓴 내용(극의 대본이라기보다는 환단고기 내용을 오페라의 흐름에 맞추어 정리한 것의 한 부분)을 그 친구에게 이메일로 보냈더니 다음날 뜻밖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내가 쓴 그 내용을 친구가 극화(劇化)하여 다시 보낸 것이다. 늦은 밤에 보냈는데 몇 시간 만에 재미있는 극으로 변해서 새벽에 돌아온 것이다. 전화하여 이러한 네용이 열 개 쯤 있으면 한편의 오페라가 된다고 했더니 그 때부터 친구의 태도가 달라졌다. 모든 내용을 내가 먼저 보내주고 그것을 극화만 하면 된다고 하니 그에게 그보다 쉬운 일도 없기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황당한 내용을 자신이 공부하여 대본을 쓴다는 것이 전혀 엄두가 나지 않았으리라.

나는 환단고기의 내용 중 친구가 알아야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쪽수와 줄수 등을 꼼꼼히 챙겨 보냈다. 그리고 매일 같은 식으로 이메일이 오고 갔다. 전체적인 대본이 1차 완성되자 친구가 사는 대전으로 달려갔다. 친구 집에서 하룻밤 묵으며 대본을 정리하여 완성했다. <아, 크고 밝은 나라! 환, 배달 그리고 단군조선>이란 긴 제목이었다.

‘2013년 국립오페라단 창작산실 지원사업 우수작품 제작지원 공모’가 있어 지원규정에 맞추어 30분 이상을 작곡하여 성악가들의 녹음(미디오케스트라 반주)을 첨부하여 지원하였다. 1차 인터뷰를 마친 후였는데, 대본을 쓴 친구와 의견다툼이 있었다. 내용 중 웅녀가 인간이 되는 과정을 두고 나는 환단고기의 내용처럼 곰을 토템으로 하는 원시부족이었던 웅족이 환웅의 가르침에 따라 고고한 정신을 가진 참인간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을 원했으나 친구는 사람들에게 그 내용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다른 안을 제시하였고, 나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며 만든 이 오페라가 또 다른 왜곡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반대하였다. 그 외에도 진행상 여러 가지 의견차가 있었고 결국 공모에 응모한 것 자체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렇게 실패로 돌아갔으나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대본을 직접 쓰기로 했다. 지인 작곡가와 함께 희곡작가협회에서 하는 극본창작 교육도 받으면서 새로운 대본을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지난번 내용이 너무 방대하여 ‘단군조선’으로 국한시키고, 부족한 부분들을 보강하여 내용을 정리하였다. 아직 본격적인 대본을 쓰기보다는 줄거리를 극본창작 교육을 받는 중에 지도를 받으며 수정했고 드디어 줄거리가 선생님으로부터 승인을 받자 그날 밤부터 그동안 정리해놓은 내용들을 가지고 대본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너무도 수월하게 쓰여져서 일주일만에 1차 완성되였다.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시절에 청주에서 같은 방에서 지내며 친구가 쓴 글을 내가 교정해주면서 글에 대한 안목이 쌓였던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친구는 시나 소설 등을 쓰면 언제나 내게 보여주었고 나는 독자의 입장에서 오해할 수도 있는 부분들을 고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순과 문법 등을 고쳐주었다. 그 일은 그 후에도 계속되어 친구가 호주에 내가 독일에 있을 떼에도 우편을 통하여 이루어졌고, 친구는 나의 최종 교정(?)이 있은 후에야 그 글을 탈고하였다.)

밤샘작업을 계속하다보니 목디스크가 걸려 목보조대를 낀 채로 다음 주 교육에 참여하였는데, 선생님께 대본을 보여드렸더니 화를 내시며 다시 쓰라고 하셨다. 헐~! 어쩐지 잘 나가더라니~!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대본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제목은 ‘단군왕검’

생각해보면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처음 진실한 고대역사를 접하여 경천동지할 놀라움과 울분으로 그 많은 날들을 참아내며 작곡가로서의 본업을 완수하려 했던 많은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7년이었다.

이제 ‘2014 공연예술 창작산실 육성지원 오페라 부문 음악공모’에 도전하는 것이다.
작곡은 주요 아리아 등을 이미 작곡해 놓기도 해서 별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다.
30분 이상의 분량이면 제출이 가능했지만, 그 때까지 작곡된 것이 83분이어서 미디MR에 성악가와 합창단의 녹음을 하여 제출하였다. 다행히 시범공연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오페라단과 매칭하여 참가한 것이 아니어서 오페라를 처음 공연하는 나로서는 어려움이 많았다. 부랴부랴 오페라단이 아닌 기획사를 선정하여 진행하다보니 문제가 많았고, 지휘자의 선정과 리허설 시의 문제 등에도 뜻대로 되지 않아 시범공연이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다음해 또 다시 ‘2015 공연예술 창작산실 육성지원 오페라 부문 음악공모’에 도전했다. 이때는 전년도의 실패를 거울삼아 처음부터 오페라단과 매칭하여 진행했다. 또 다시 시범공연 작품으로 선정되고, 성악가들은 대체로 이전 해의 성악가들로 정해졌다. 지휘는 이전 해에 지휘자와의 의견차이로 어려웠던 것을 생각하여 내가 직접 지휘하기로 했다.
첫 연습을 하는 날, 많은 사람들의 스케줄에 맞추다보니 오전 10시에 시작하게 되었는데, 아침 일찍이다보니 한 성악가가 삑사리가 났다. 그 성악가는 매우 뛰어난 기량과 음악성을 지녔고 그 중 연장자였는데 연습 후 식사자리에서 자신의 삑사리를 의식했는지 음이 높다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리아는 그의 기량에 맞추어 처음부터 조정해주었고 전년도 시범공연에서 멋지게 공연했던 곡이다.) 이 말은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나오며 키를 낮추어달라고 요청했고 그 영향으로 다른 성악가들도 음을 낮추어달라고 요청하며 불만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 또한 전년도에 아무 불만 없이 멋지게 시범공연을 했던 성악가들이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열심히 하는 것조차 우습게 되어버렸고 결과는 해보나마나, 나는 결국 예비시범공연을 마친 후 본시범공연을 위해 많은 성악가들을 교체해야만 하였다. 짧은 기간 동안 새로운 성악가들을 캐스팅하여 준비하였으나 30분 한정의 공연이라 각 성악가는 한 두곡만 소화하면 되었으므로 훌륭하게 소화하여 본시범공연을 무사히 잘 마쳤다.
시범공연이 끝났으니 우수작 발표만 남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결과공고는 한 달이나 지나서 나왔다. 결과는 “지원대상 없음”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5편의 시범공연 작품이 모두 “자격미달”이란 것이다.

허허... 허탈하였다. 그 후 나는 여러 달 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이 오페라는 내가 음악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만든 작품인데 그 것이 허사로 돌아가니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실제로 나는 남은 삶의 의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았다. 내 음악적인 모든 것을 최고도로 발휘하여 만든 작품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나의 재능은 쓸데없는 재능이고, 그런 나 혼자만의 재능을 가지고 아무리 열심히 무엇인들 해보아야 결국 헛짓하는 것 외에 무엇이 되겠는가? 결국 인정받지 못할 재능을 가지고 열심히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허망한 짓이다. 이 부끄러운 내 삶을 이젠 끝내야한다...
결국 자살이라는 결론 밖에 나지 않았으나 가족이 있었기에 자살을 실행하지 못하고 그저 생명을 연장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시간이라는 약발 때문에 나는 다시 오페라를 다듬었고 결국 완성했다. 공모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여러 편의 오페라를 쓸 수도 있었을 수년 동안 시범공연을 하느라 완성하기보다는 이미 완성된 부분들을 30분 한정시간에 맞추어 이리저리 짜깁기하는데 보냈었으나 이제 공모를 포기하고 차분하게 정리하니 쉽게 곡은 완성되었다.
웅장한 내용이라 오히려 시범공연에서는 쓰일 수 없어서 미루어왔던 이 오페라의 하이라이트 부분 [조선의 건국-제천]부분은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그대로, 신비로우면서도 웅장하고 자애롭고 따뜻하고 친근하고 흥겹고 재미있으면서도 힘이 넘치며 웅혼한 우리민족 정신을 가슴이 벅차도록 느낄 수 있는,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멋진 명곡을 완성하였고, 따로 오케스트라 연주용으로도 만들었는데 이것은 오페라 공연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관현악 모음곡으로 따로 연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간 어느 날, 시범공연에 함께 했던 오페라단 단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작품이 아까우니 작게 콘서트형식으로라도 공연을 하자는 것이다. 오우 케이! 내가 마다할 일이 있겠는가!
대관은 이미 되어있는 상태에서 연출, 캐스팅을 짰다. 이전에 했던 성악가도 있었는데, 연습에서 삑사리를 냈던 그 성악가를 다시 기용한 것이 실수였다. 그 성악가는 워낙 훌륭한 기량을 가진 분이고 이 오페라에 꼭 맞는 분이라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분은 연습을 겸한 첫 모임에 와서는 오페라 내용을 수정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만류했으나 계속되었고, 단장님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동조하는 것을 느꼈는지 결국 그 이후 시간(1시간 넘게) 오페라 내용을 수정하는 것에 대해 혼자서 주장했고, 거기서 그 모임은 파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그분은 집에 돌아가서 두 가지 안으로 구체적인 수정안을 작성하여 단장님께 보냈다. 이것을 보면 그분이 얼마나 이 작품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분은 훌륭한 오페라 가수일 뿐 아니라 다른 오페라단에서 많은 제작에 참여한 경험이 풍부한 분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성악가로 참여한 것이고, 이미 작품이 완성되어 책으로 만들어져서 연습을 시작하는 자리인데 자신의 역할과 상관없는 주장을 하여 거꾸로 돌려놓은 것이다.

그런 일로 공연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그 일로 단장님과 나와의 사이에서도 어려움이 있었으나 결국 다시 시작해보기로 하였다.
후원자를 찾아보기로 했는데, 이 오페라가 민족의 고대역사에 관한 내용이라 그 쪽 분야의 단체를 찾아갔다. 전에 기회가 있어 연락하던 곳이라 내가 나섰고 단장님은 다른 일이 있어 나 혼자 갔는데 다행이도 후원을 해주신다는 구두 약속을 받았다. 그 후 그 쪽 책임자분이 오페라단 사무실로 직접 오셨고, 이 자리에서 민족의 시조이신 “단군왕검”을 오페라로 하는데 600석은 너무 규모가 작다면서 큰 공연장에서 하라고 하시는 것이였다. 물론 일체의 경비를 약속하셨다. 구두로.
이미 계약된 공연장을 취소하며 큰 공연장으로 바꾸려하니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단장님의 노력으로 취소와 재계약이 이루어졌으나 기간이 여러 달 뒤로 바뀌었다. 물론 이 과정은 후원단체 쪽과 많은 전화통화를 하며 단계마다 다짐을 받아가며 결정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는 다시 실제 공연하는 일에 집중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 후원단체 책임자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실무진에서 후원을 반대한다고. 처음엔 그말이 그리 중요한 말인지 몰랐다. 무슨일이든 반대가 있게 마련이려니 생각했고 결정권자가 그토록 확신있게 추진한 일을 실무자 몇몇이 반대한다고 어떻게 되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 말은 더욱 강해졌고, 그 쪽에서 내부적으로 실무자들이 모여 이 오페라 후원을 결정하는 회의을 가졌다고 하면서 결국 후원이 취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오페라 내용을 보고는 많은 분들이 무겁다고 말한다. 그분들은 사랑이야기를 다룬 오페라와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의 역사 이야기를 어찌 사랑이야기와 비교하는가?
나는 이 오페라에 ‘사랑내용이 없어 아쉽다’는 지적을 수도 없이 받아왔다. 그러나 사실 순임금과 요임금의 두 딸들에 대한 재미있는 사랑이야기가 있다. 주인공 단군왕검의 사랑이야기가 없다는 말인 듯한데, 진실한 역사를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오페라에 굳이 픽션으로 민족시조의 사랑이야기를 넣어야만 하는가? 웅혼한 우리민족의 역사적인 사실 앞에 고양되는 민족정신으로 인하여 청중 모두가 벅찬 민족애를 느끼기를 목표로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이 오페라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하는 물음도 들어왔다. 대부분의 오페라가 주인공 위주로 스토리가 전개되어 주인공이 무대에 가장 많이 나온다. 이 오페라는 단군왕검의 탄생부터 붕어하시기 까지 중요사건들 특히 중국의 고대 당나라(요임금)와 우나라(순임금)과 얽힌 이야기를 다룬 오페라인데, 주인공이라 하여 임금님이 모든 사건을 직접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다. 신하를 시켜서 해결하는 것 그 모두가 단군왕검의 치적이다.

나는 수도 없이 들어온 ‘어렵다’는 말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사실 용어가 어려운 것 외에는 어려운 점이 없다. 그리고 용어는 어차피 실제 역사에서 쓰인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다른 용어로 대체하면 코미디가 된다. ‘단군왕검’을 다른 용어로 부를 수 있는가? 단군조선 이전의 우리나라 이름 ‘배달’을 다른 이름으로 바꿀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풍백 팽우’, ‘환부 유호’ 등 관직명과 사람이름이 아무리 어렵게 느껴져도 그대로 부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 이름을 가능한 빼려고 했고 나는 그 자체가 중요한 역사이기에 더 드러내려했다.) 최근의 드라마 ‘아스달연대기’를 생각해 보라. 처음 들었을 때 그 황당함이란!

나는 이 오페라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국악적인 선율을 주로 사용하였다. 판소리, 농부가, 마당극 등 민속노래 풍과 정가, 정악 등을 기본으로 하여 작곡하였는데 그 선율들을 새로운 자연음악을 만들고자하여 내 스스로 체계를 세워 만든 “5도화성론”을 사용하여 ‘입체적이고 화성적인 공간감을 추가하여 국악의 멋을 새롭게 살린, 음악역사에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새로운 자연음악’이다. 고리타분한 옛 음악이 결코 아니다.
쉽게 들어오는 음악이라고 하여 쉽게 식상할 수 있는 그런 음악도 아니다. 나는 그동안 단순하면서도 반복하여들을수록 더 매력 있는, 신비한 음악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작곡해왔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잘 알고 있다.
또한 가끔 내 음악을 ‘올드하다’고 표현하는 말도 들었다. 새로운 장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기존의 국악을 사용한 음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매도해버리는 것이다. 선입견을 가지면 새로운 음악은 결코 올바로 들리지 않는다. 어차피 새로운 음악인데 기존의 무엇과 비교하겠는가?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그 음악을 올바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도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이 오페라가 올바르게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내가 꿈꾸어왔던 새로운 환희의 벅찬 감동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피어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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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진섭 약력 :

-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졸업.
- 독일 Heidelberg - Mannheim 국립음악대학 졸업.
- 한국 최초의 컴퓨터음악 독집 음반 제1집 ‘무한을 향한 음악’ 및 2집, 3집 출반.
-한국방송협회, 한국신문협회 주최 ‘겨레의 노래 및 응원가 공모’
[겨레의 노래 ‘하나로 세계로 미래로’] 장려상
- (사)대한사랑 주최 ‘개천가요제’ 작곡공모
[어아가] 금상
- 일본 고베 ‘국제 컴퓨터음악제`98’ 한국 측 초청작가.
- 제61주년 제헌절 경축식 공식행사 위촉작품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교성곡 “찬란한 조국”}
- 자연에서 온 새로운 화성이론 완성 및 출판
{국악과 양악을 위한 “5도화성론”}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4년, 2015년 오페라 창작산실 {오페라 <단군왕검> 시범공연}
- 201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RKO 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 당선
{북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해학”}
- 한세대학교 겸임교수, 작악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