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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오페라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19-07-31 12:45
창작오페라 behind story ①
글 박창민 (오페라 작곡가)

나의 창작 오페라 작업과 숨겨진 재미난 이야기들

돌이켜 보니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1998년 6월 유학길을 떠나던 때부터를 따지자면 이 순간까지 어언 21년이 지났다. 그리고 2003년 10월 귀국 후 작곡가로서의 본격적 활동을 한 지도 벌써 만16년이 다 되어가니 꽤나 긴 시간이지만, 너무 빨리 지나간 듯하여 내심 아쉽다. 그간 참 많은 작업과 공연행사를 치르며 지내 왔다. 소위 말해 왕성한 활동을 했다고 본인 스스로 말 할 수 있지만, 그저 앞만 보고 살아온 나의 삶을 깨닫는 순간, 앞선 순간들이 모두 즐겁지만은 않았다는 걸 느낀다. 필자는 오늘 이 글을 통해 오페라작곡가로서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기억나는 여러 재미난 에피소드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또한, 이 순간 이 글을 통해 잠시나마 ‘바쁨’이라는 핑계를 제쳐두고, 커피 한 잔 벗 삼아 나의 재미난 과거를 돌아다보는 여유를 가지는 시간을 마련해 볼까 한다.
앞서 언급한바 필자는 2003년 귀국 후, 2010년 처음으로 오페라 창작에 관한 위촉을 받아 작업을 시작하고 그때의 인연을 바탕으로 오페라작곡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 후로 9년이 지난 지금 6편의 오페라(필자는 이들을 나의 ‘여섯 명의 아이들’이라 칭하지만)를 썼다. 나열하자면, 각각 ‘왕산 허위(2010), 광염 소나타(2011), 무녀도(2012), 유랑(2014), 배비장전(2015), 놀부전(2018)’ 이다. 9년이라는 햇수로 따지자면 적은 수의 오페라 작업은 아니라 할 수 있지만 뭐 앞선 유럽의 거장들에 비하면야 보잘것없는 결과란 생각이 들 뿐이다.
어찌 되었든 이 작품들 중 규모가 꽤 크게 무대에 올려졌었던 ‘왕산 허위’, ‘광염소나타’, ‘배비장전’과 제16회 대구오페라축제(2018년)에 소극장용으로 먼저 선을 보인 코믹오페라 ‘놀부전’은 공연이 끝난 지금도 많은 장면이 생생하게 그대로 기억에 남아 있다. 다시 말해 할 얘기들이 많이 있다는 뜻이 되겠다.
필자의 이야기는 바로 앞서 언급한 나의 작품들을 통해 여기서부터 시작을 해 볼까 한다.
작곡가로서 창작오페라에 관한 위촉을 받는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자 이를 통해 개인의 역사 즉 인생에 길이 남을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내가 처음 오페라 위촉을 받았던 때는 2009년 ‘구미오페라단(단장 박영국)’을 통해 애국지사의 일대기를 담은 ‘오페라 왕산 허위’를 위촉받았을 때였고, 그 후로 세월이 지나 다섯 번째 오페라 ‘배비장전’을 위촉받았을 때는 2014년 늦여름, 하필 비가 억수같이 올 때 서울의 ‘더 뮤즈 오페라단(단장 이정은)’ 관계자들을 만나 오페라 위촉과 관련한 제안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나는 대구사람이고, ‘더뮤즈오페라단’은 서울사람들이다. 그 위촉 그 한 시간의 만남을 위해 하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그 날 늦은 저녁에 대구까지 내려왔다. 이 얼마나 기억할 만한 일인가! 물론 작곡료 즉 액수를 떠나서 이런 작업을 한다는 자체는 즐거운 일은 분명하다. 아마도 이러한 극적인 장면들(애국자, 억수 같은 비 등등)로 인해 작곡가들은 작품료를 산정할 때 항상 감성에 치우치는 탓에 결정적인 계약에 손해를 보는 듯하다(이러한 이유 탓에 계약을 위해서는 이성적이며 냉정한 ‘매니저’가 있어야 된다라고 이제야 깨닫는다. 사실 이 분야는 앞으로 클래식의 창작 분야 등 저작권 관련하여 각종 합법적인 계약을 위해 도입이 시급하다고 보아 진다).
조금 전 얘기하던 2009년과 2014년의 작품위촉이 각각 잘 성사되고, 낭만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오페라 창작작업이 불현듯 ‘원고마감’이라는 운명적 시한폭탄이 되어 눈앞에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 건 무려 작품 착수 후 4개월이 지난 즈음일까! 물론 첫 작품 ‘왕산 허위’는 1년 채 안 되는 나름의 긴 시간을 할애 받았지만, 첫 작품이라 그런지 거장들의 오페라 악보에 대해 연구하고 대본에 관해 심도 있게 고찰하고, 작품에 쓰일 악상 등에 관해 고민하고 등등 기초체력단련의 시간이 많이 필요했었던 것은 분명하다. 솔직히 말해 워밍업 시간이 조금 길긴 했다만서도.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시간의 흐름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이제 제대로 된 작업을 ‘시작’해 볼까 하던 찰나에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리는 거였다. 휴대폰의 화면에 ‘단장○○○’이라고 이름이 떠 있길래, ‘웬일로 전화를 하시지?’ 생각하며 받았다. ‘박선생, 잘 지내고 있는가?’ 하며 반가운 톤으로 걸려온 단장의 전화에 내심 반가이 맞았는데, 단장의 질문의 요지는 ‘작품 잘 돼 가나?’를 묻는 것이었다. 물론 아주 상냥한 톤으로 물어왔다. 그에 대해 나 또한 당연히 ‘잘하고 있고, 잘 돼 가고 있다!’라고 답변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이후의 뭔가 스산한 기운과 개운치 않은 그 느낌은 이런 작업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그런 감정일 거다.
어쨌거나 이제부터 시작에 불과하다. 그날 이후 2, 3일 혹은 한 주 걸러 한 번씩 잊을 만하면 걸려오는 안부전화?는 뭐랄까, 무슨 빚쟁이가 빚 독촉하려고 거는 전화로만 여겨지기 시작했고 전혀 반갑지 않았다. 솔직히 첫 작품 ‘왕산 허위’를 한참 작업 중일 때는 시점이 한여름이었다. 그 무더운 대구의 여름 날씨 속에 작업실 의자에 앉아 어찌나 오랫동안 작업을 했던지 그 당시 나의 몸 중에 ‘앉고 기대는 부위’는 오로지 땀띠 때문에 애를 먹었다. 실제로 작업에 몰두할 때는 몇 시간 째 의자에서 일어설 생각 자체를 못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같은 자리에 앉아서 쓰고 있다. 뭐 그 자리가 어디 가겠는가!
첫 오페라 ‘왕산 허위’의 당시 공연날짜는 11월 5일. 한참 작곡에 몰두하던 그때가 8월 초 무렵이었으니까 이제 공연이 석 달 남짓 남았다. 일정상 오페라단의 연습 날짜는 다가왔고, 달력을 살펴본 순간 그리고 현실을 깨닫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창작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과수원 과일처럼 햇볕이 충만할 때는 잘 영글지만, 궂은 날씨에는 그 속도가 더뎌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오페라단 단장님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자연의 현상 정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제품 납일 준수’ 즉 서류상의 작품완성 및 전달날짜만을 직시할 뿐 창작의 가변성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게 말해 그렇지만, 때때로 이러한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 현실이다. 자고로 창작이란, 자판기의 커피처럼 돈만 넣으면 근사하게 쑥쑥 뽑혀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찌 되었건 돌이켜 냉정히 생각하면 날짜를 준수하는 것이 맞는 말이지만, 사실 창작의 고통 즉 산고에 시달리던 그 당시에는 어찌나 화가 나던지! ㅎㅎㅎ
잊을 만하면 밤늦게 걸려오는 전화는 완전 빚쟁이 혹은 악마의 전화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농담이다만, 할 수만 있다면 스팸처리 혹은 수신차단 해버리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다. 그래도 차마 그럴 순 없지 않은가. 근데 그 당시 전화 걸려 올 때의 상황이 이렇다. 나는 집의 작업실에 콕 쳐박혀서 진땀승부를 하고 있고, 단장과 오페라관계자들은 어딘가 구이집에 앉아 시원한 맥주와 소주를 곁들이고 있는 그 장면을 떠올려 보시라. 내가 화가 날만도 할 것이다. 아, 그 순간만큼은 참 약오르고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원고마감의 절벽에 서 있는 창작인의 비애여~! 암튼 그런 탓에 밤늦은 전화가 너무 싫어서 아예 전화기를 사흘 정도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가 나중에 꺼냈을 때는 참으로 가관이었다. 다음날 오전에 출연성악가를 통해 걸려온 전화는 참 기가 막혔다. 오페라 단장은 내가 도중에 도망간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후문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사실인즉 단장님의 입장에서는 거액을 들여 공연을 만들어야 하니까 자칫 실패할 경우 큰일이 벌어질 것이고, 그리고 모든 출연진이 작곡가인 나 하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어찌 조바심일 생기지 않으리! 충분히 이해는 된다. 우여곡절 끝에 전체 4막 중 제1막과 제2막을 먼저 보내주었다. 그나마 그거라도 보내주고 나니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
잠시 눈을 붙인 후, 저녁이 되어 깨어나자마자(창작인은 거의 밤동물이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음 작업을 위해 집중하려던 그때, 악마 아니 단장님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는 전화기만 봐도 머리털이 서려고 하는 찰나였다. 심호흡을 두 번 하고 최대한 비전투적인 태세로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속의 소리가 시끌벅적한 걸 보니 분명 막걸리집이라는 확신이 간다. ‘박선생~!’, 예전에 듣지 못한 꽤 상냥한 톤이었는데, ‘네, 단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약간의 경계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다짜고짜 웃음 섞인 큰 목소리로 ‘박선생! 오늘 첫 연습을 해봤는데 작품 정말 잘 나왔더라. 대성공이다~!. 아리아 선율들도, 합창 선율들도 모두 만족스럽더라.’. ‘아, 네. 그것 참 반가운 소리로군요.’ 나름 밝게 대답해주었다. 나더러 곡 쓰던 거 잠시 내려놓고 지금 당장 자기들이 있는 곳으로 나오란다. 밤새도록 술 사주고 싶단다. 물론 작업 땜에 그 자리에 나갈 순 없었지만, 전화를 끊고 잠시 동안 생각을 해보니, 잔잔한 웃음이 났다. 전화로 목소리 높인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극적으로 반전될 수 있단 말인가! 또, 이런 생각을 했다. 오페라단 단장님은 참 다혈질이로구나. 이후에도 세월이 지나 다양한 오페라단의 단장님들을 접해 봤지만 대다수가 다혈질인 듯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방정식이 성립된다. ‘오페라단장은 다혈질이라야 되고, 다혈질이라야 오페라단장을 할 수가 있다’. 다른 표현으로 오페라단장님들은 아주 열정적인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첫 오페라 ‘왕산 허위’ 작업을 마치기 위해 산 넘어 산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말해 주듯 한 장면 한 단락 써 내려가서 이윽고 오페라 전체의 정리단계에 다다랐고, 무엇보다 제3막과 제4막의 여주인공이 죽는 장면과 주인공 왕산 허위선생의 분노 장면과 사형당하는 장면에서 정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오페라 창작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를 쓰다 보니 뜻하지 않게 첫 번째 오페라 ‘왕산 허위’의 이야기로 전체를 장식해 버린 듯하다. 다섯 번째 오페라 ‘배비장전’도 계절은 달랐지만, 상황은 비슷했었다. 나의 다섯 번째 아이 ‘배비장전’은 2014년 9월에 착수해서 이듬해 2015년 1월 17일에 공연(제1회 대한민국 창작오페라 페스티벌, 장소: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했으니까 얼마나 긴박했겠는가.
이 두 오페라 모두 아주 성공적인 초연을 했었고, 지금도 거의 해마다 공연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 애착이 간다. 나의 숨겨진 이야기를 부각시키려고 ‘단장님’을 조금 악역으로 모셨지만, 결과적으로 이분들은 주인공이다. 이분들이 있기에 오페라는 탄생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좋은 작곡가를 만나는 것도 복이거니와 다시말해 이러한 좋은 만남을 통해 ‘win-win’ 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 지면을 통해, 대한민국의 창작오페라 발전을 위해 늘 애쓰고 힘쓰는 모두를 위해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고 싶다. 대한민국 창작오페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