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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유학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19-05-02 14:28
음악유학의 허실 - 그 이중성의 안과 밖



이영진(음악평론가. 뮤직뉴스 24 음악지도사 아카데미 교수)

외국의 학문·기술·문화 등을 공부하기 위해 외국의 교육 연구 기관에서 연수하는 활동을 사전적 의미로 유학留學이라 한다. 유학은 요즘 사회적으로도 심각하게 논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조기유학을 포함하여, 어떤 공부를 위한 유학이든 스스로 미래의꿈 실현을 위해 누구나 한번쯤 마음에 담고 있었던 실천항목이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공부하러간 사례는, 즉 해외유학은 이미 오래 전 고구려 영류왕 5년(622년)에 당나라로 유학생을 보낸 것이 최초의 기록으로 <삼국사기>에 전해지고 있다. 그 무렵 당나라는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와 신라의 유학생을 많이 받아들인 것으로도 기록돼 있는데, 학문 분야에서만이아니라 당나라의 문물·문화·풍습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연구하고 터득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당연히 음악분야에 대한 공부도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 된다. 그러나 개연성의 관점은 5세기 후반, 고구려가 중국의 위魏・수隋・당唐나라에 우리 음악을 수출하였다는 기록이 문헌에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명백해 진다. 그런데 당시 물론 악기의 교류도 있었겠지만, 그런 측면보다는 연주가, 즉 인력을 수출했다는 정황이 매우 높다. 적어도 오늘 날의 개념으로 생각했을 때 실내악 규모의 악단이 유학을 겸한 상주 연주단 자격으로 이들 나라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여러 고문헌에 남아 있다.
이렇듯 한국인의 음악 유학은 비록 정치적 배경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기원이 결코 일천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 사료는 입증하고 있다. 개별화 유학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 말하자면 어떤 국가 간 정치적 이해관계의 수단으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는 해외 음악유학은, 오래 전 문화 풍습의 교류와 함께 예술 측면의 교류에서 발단 되었지만, 당시로선 우리 음악을 중국 또는 다른 나라의 음악과 접목하거나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 차원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치적 배려에 의한 해외유학이 개화기 이후 자발적으로 개별화된 해외 유학과는 그 근본 동기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발적 개별화 유학으로 판단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양악) 유학생은 어떤 인물일까? 아마도 여러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김영환 선생이 양악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한 첫 사례로 알려져 있다. 최초의 피아니스트 최초의 정규 음악교육생, 최초의 음악 유학생, 최초의 피아노 개인 소유자 등, ‘최초’란 수식어를 여러 개 가졌던 김영환은, 1911년 일본으로 서양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한 한국 양악계의 프런티어이다. 이후 최초의 성악가로 흔적을 남긴 윤심덕, 그리고 홍난파 등이 일본 유학의 뒤를 이었고, 김영환과 비슷한 시기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김윤근, 그리고 김세형과 현제명이 당시 대표적 유학 출신 음악가들이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드려 질 수밖에 없는 이들 해외 유학파 음악가들은, 이미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내 양약계의 주도적 역할은 물론 주도권 경쟁에서도 확연하게 앞서 나갔다.
그 결과 국내 양악계는, 극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유학파와 국내파라는 분할구도를 갖게 되었고, 다양한 부분에서 주도권 경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렇듯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음악 전공자들의 유학에 대한 관심은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수요와 공급의 부침이 심하여 6,7십년 대는 유학생의 가치가 사실상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을 만큼 희소하였고, 80년 대 들어서는 국내대학을 졸업하고 당연히 가야하는 필수 코스처럼 여겨져 수많은 전공자들이 유럽으로 미국으로 유학의 꿈을 펼치려 국내를 떠났다. 이른바 유학 전성기에 돌입하게 된 셈이다. 80년대 들어 대표적인 유학 대상국가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미국, 그리고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급물살을 타게 된 러시아를 포함하여 해마다 상향 곡선을 긋고 있는 해외 음악 유학생의 수가 정확이 얼마인지에 대한 통계는 잡혀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해외 유학생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설치돼 있지도 않거니와 유학이 제도적인 교육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해외 주재 한국공관의 업무에 유학생들의 교육현황까지 파악하도록 돼있는 매뉴얼을 어느 곳에서도 확인할 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열거한 이들 국가 가운데 비교적 음악유학생 분포가 많은 오스트리아 경우도, 2012년 비공식 집계로 1천 5백 명 내외의 음악 전공자들이 유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정도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른바 이들 음악 유학 주요 대상국인 5개국(이태리・오스트리아・독일・미국・러시아) 외에도 프랑스・영국・벨기에・네덜란드・불가리아・헝가리 등을 포함하면 어림수로 5천명 내외의 음악 전공자들이 유학의 꿈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유학생 5천명 내외로 추정되는 음악 전공자들은, 이른바 양악洋樂의 본토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한시적으로 정착하여, 분야별로 짧게는 사오년 길게는 십여 년을 공부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수학기간은 국내대학에서 전공을 마치고 정상적인 과정의 유학을 간 경우를 계상한 것이다. 아울러 유학 기간을 단순히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 무엇을 전공하며 또 어느 나라에 유학하여 공부하느냐, 하는 점도 수학修學기간과 상관관계에 놓인다. 뿐만 아니라, 나라별로 어느 전공이 우세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성악이 강세인 이태리와 독일, 현악과 피아노가 강세인미국과 러시아, 기악이 강세인 오스트리아, 작곡이 다소 비중 있는 프랑스와 독일 등으로 유학 대상국의 선호도가 작용하며 이 또한 유학기간의 증감에 적잖이 작용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세계무대에서 발군의 기량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성악도 들이 대개 이태리를 유학 대상국으로 선택하는 이유도 이러한 배경에서이고, 과거 갈라미언과 도로시 딜레이 같은 명 조련사가 있었기에 바이올린 전공자들이 줄리어드를 앞 다투어 유학했던 배경도 그러함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이런 선택 취향에 지각 변동이와서 상당수의 유학생들이 해외유학 선택의 고려 대상에 경제성
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이같이 고행과 같은 유학의 끝에서 취득하는 게 이른바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의 석·박사학위에 해당하는(미국을 예외로 하고) 디플로마(Diploma)라는 학위 개념의 증서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 희소가치가 높았던 시절에 극진히 대접받던 디플로마 수여자가 요즈음 디플로마는 물론이고, 자기 전공분야에서 조차 웬만한 스팩을 쌓지 못하면 시쳇말로 어느 곳에도 명함내밀기 힘든 시대가 왔다는 현실이다. 이것은 국내 학부생들이 취업에 유리한 시간을 확보하고자 졸업을 의도적으로 늦추는 기현상과도 같이, 일부이긴 하지만 해외 유학생들 역시 취업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느라 귀국을 무리하게 늦추거나 아예 유보하는 현실로까지 치닫고 있는 현상으로 변형되었다. 따라서 이렇듯 해외 유학의 어두운 일면은 단순히 수급 불균형 현상으로만받아드릴 게 아니라 심각한 사회병리 현상으로까지 발화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점에서 딜레마이다.
앞서 비슷한 입장의 상황을 언급했듯이, 해외 유학생의 수가 정확하게 몇 명인지에 대한 현황 파악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교육부나 여러 학술재단에서 파견한 유학생을 제외하고, 해외 공관에서 조차 자국의 유학생이 몇 명인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글에서 제시하는 유학생 수는 대강의 추정치일 수밖에 없다. 그 추정치는 유럽 각국과 북미 지역에 주로 유학하고 있는 음악 유학생을 5천명 내외로 예상했을 때의 수치인데 다음과 같은 계산에서 근거할 수 있다.
즉, 국내에 설치돼 있는 90여 개 음악대학 또는 음악학부(과)의 2016년 현재 입학 정원은(교육대와 전문대를 제외한) 6천 명 정도이다. 이 가운데 전공 특성상 여학생의 성비를 최대 65%로 봤을 때, 매년 음악 전공 여학생은 4천여 명이 배출되고, 남학생은 2천 여 명이 졸업하는 셈이 된다. 이 셈을 근거로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률을 고려해서 추정하자면, 취업자를 50%(음대 졸업자의 취업률은 타 학부 전공보다 높은 편이다. 개인교습소, 음악학원 등이 취업률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군 입대 및 대학원 진학자 또는 또는 취업 준비생을 30%, 결혼 및 이민 등이 5%, 기타 분류되기 어려운 사유 등이 5% 정도로 구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객관적 현실에 근거한 추정치이고 명확한 통계 수치가 아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논의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6천 여명의 졸업생 가운데 이것저것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나머지 10%로의 행방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물론 심증이지만, 해외 음악 유학생 5천 여 명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나머지 10%로의 행방을 모두 해외 유학으로 단정한다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은 곧 매년 6천 명이 넘는 국내 음악대학 졸업생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6백여 명이 이미 언급한 미국이나 오스트리아, 독일, 이태리, 러시아 등지의 국가로 유학을 떠난 다는 사실이고, 반면에 매년 유학을 떠난 학생 수의 절반에 가까운 대략 3백여 명 내외의 학생들이 유학을 마치고 귀국생의 신분으로 국내에 입국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사실 귀국하는 3백 여 명이란 숫자도 실상 표면적인수에 불과한데, 이를테면 서울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 홀, 세종문화회관 챔버홀, 금호 아트홀 등 귀국 독주회가 주로 열리는 곳의 연주회(서울지역만 대상으로) 연간 개최 평균치에 플러스알파인 수치이다. 플러스알파가 의미하는 것은 귀국연주회를 할 조건이 안 되거나, 차마 공개적으로 드러내 놓고 유학의 음악적 성과를 알릴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는 귀국생 수를 포함한 추정치이다. 내가 이 시평에서 논점論點으로 삼고자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부터 이다.
해외에 나가있는 유학생들은 어쨌거나 현재 학생 신분이고, 주경야독을 하던 또는 훨씬 좋은 여건에서 공부하든 일단 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인해 문제 삼을 부분이 그다지 많지 않다. 따라서 그들이 놓인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논의하자면, 실보다는 득이 훨씬 많다고 봐야 한다. 이를테면, 양악의 본 고장에서 체득하게 되는 유·무형의 음악적 감수성, 음악적 토양에서의 음악적 성숙, 음악문화의 다양성과 수많은 정보의 획득, 그리고 현장감과 함께 클래식 음악의 최근 경향까지 경제적인 형편과 함께 본인이 부지런만 떤다면 얼마든지 음악적 다양성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게다가 종횡으로 맺게 되는 인맥, 가까이서 바라 볼 수 있는 대가(또는 신예)들의 연주, 어디 그 뿐인가? 교향곡과 오페라, 실내악에서 독주에 이르기 까지 일생을 통해 얻기 힘든 소중한 연주회를 수년 또는 십여 년 동안 다종다양하게 맛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유학생들은 선택된 신분인 셈이다. 따라서 고국에 대한 향수감, 생활비 마련의고통, 문화적 이질감과 그로 인한 심적 갈등, 고독감 따위는 오히려 사치에 해당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음악 외적 조건들은 이미 유학을 결심하기 전에 충분히 고려됐을 것이기에 유학으로인해 잃거나 버려야 하는 것에 대해 연민의 정은 굳이 품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렇듯 많은 부분에서 얻게 되는 것과는 달리 정작 생존의 현실로 돌아 왔을 때, 바로 그로인해 다가오는 수습할 수 없을 정도의 상실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 년 또는 십 수년 간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 온 스스로에게 현실적인 보상이 아무것도 마련되지 않을 때의 패배감과 공허감, 그것은 유학 생활을 통해 얻은 많은 득보다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다 준다는 점에서 치유하기 어려운 독毒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학연과 지역 연고주의가 족쇄처럼 채워져 작용하는 정서에서는 따로 주문할 처방이 없다. 비교적 빠른 방법은, 배경 좋은 집안 출신이거나 아니면 아주 대단한 경력을 쌓아야만 한다. 말하자면 인지도 높은 콩쿠르에서 몇 차례 입상해 음악계에서 주목 받을 만한 스펙을 비축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반드시 보장되는 자리는 없다. 예고 실기강사 자리는 하위직 공무원 임용 경쟁률 보다 높고, 대학 시간강사 자리는 언감생심 꿈꾸는 자의 것이 결코 아니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윤택하면 그나만 개인 교습소나 학원을 차려서 전공의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초등학교 방과후 활동의 계약직 강사 자리도 수월치 않다. 또 정작 방과후 강사로 나가자니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고, 그마저 안 하자니 스스로 처한 상황이 치욕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음악풍토 속에서 다행히 귀국 유학생 취업의 난맥상을 치유해 주기라도 하듯 몇몇 뜻있는 기업의 연주단 창단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사회공헌도 높은 사업으로 주목 받고 있다. 현재로선 아직 미흡한 수준이지만, KT챔버나 코레일심포니오케스트라 같은 공기업 연주단이 속속 창단되어 넘쳐나는 귀국 유학생들의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마련된다면 우수한 자원의 활용 면에서 어느 정도 해법을 찾게 될 것이다. 또한 지방자치 단체 소속예술단(도립·시립·구립 등)의 꾸준한 창단 의지도 고급 인력인 해외 유학생들의 일자리 창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2013년 10월 현재 각 자치단체 소속 직업 합창단이 50여 개 합창단을 상회하고 있고, 경쟁력 있는 군郡 단위에서도 직업합창단 창단을 고려하거나 준비 중에 있는 실정이다. 창단 역사가 그다지 길지 않은 자생적 민간 오케스트라 십 여 개도 근간에 활동 영역을 넓혀 가며 기존 메이저 악단의 독주를 견제하는 세력으로커 나가고 있다. 물론 그곳엔 상당수의 해외 유학생이 귀국하여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학을 다녀 온 전공자들만이 높은 음악적 수준을 드러내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들이 다년간 양악의 본 고장에서 듣고, 느끼고, 맛 본 음악적 경험은 분명 완성도 높은 음악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게 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들이 국내 양악 연주의 질을 몇 단계 끌어 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내공을 쌓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앞글에서 밝혔듯이 유학파와 비유학파의 갈등 구조이다. 곧, 국내파와 해외파의 분할구도인데 어차피 공연(연주) 무대라는 것이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와도 같아 냉혹하게 실력으로 승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그 부분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국내 유수의 교향악단이나 시립합창단 등에서도 일반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지만 쟁점으로 부각되지는 않는다. 또한 애당초 이런 민감한 부분을 배제하기 위해 유학도 출신들로만 구성된 연주단도 속속 등장하고 있고, 차별화를 선언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음악 유학이 반드시 취업과 연계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또 그것이 개인의 허욕에서 비롯된 스펙 쌓기가 아니었다면, 음악을 전공한 자신의 음악적 성찰과 서양 음악의 본거지에서 다년 간 생활했다는 그 점만으로도 분명 유학이 가져 온성과는 값진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해외 유학으로 시간과 경제적 손실, 그리고 온 몸으로 크나큰 대가를 치렀지만, 훗날 그 가치가 자기 삶 속에 녹아들어 음악적인 것과 융합될 때 유학생활의 값진 결과가 분명 올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