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뉴스등록 프리뷰등록 이용안내
(2019. 10. 23 수)
창작 오페라(오 숙 자 교수)
창작 오페라(오 숙 자 교수)
합창연합회 통합
합창해석
거장면모를 보여준
(단군왕검)한민족 역사 오페라 창작기
영남필
음악 박물관
창직오페라
합창 작곡가의 창작음악 세계(안성혁)
2018 국제컴퓨터음악 컨퍼런스를 보고   글/ 김규현(前 한국음악비평가협회 ...
제2회 독 일 한국음악제(Kor...
지역문화공간 연합페스티벌 “...
Piano Trio Sieg의 ...
  서울시 오페라단 단장실에서   세종문화회...
시온의 소리합창단 지휘자 임봉...
작곡가 이종희교수 인터뷰
한국관악협회 노덕일 회장의 대...
2018 국제컴푸터
국악 경음악잔치 제7회 ARKO ...
2015 합포만 현대음악제를 ...
한국 창작 오페라의 문제점과 ...
- 최고의 음악으로 우뚝 선 서...
피아니스트 최수현(Sarah Soo ...
일취월장한 생동감 넘친 현대음...
허상(虛像)인 껍데기들은 저리...
무반주 합창음악의 정석(定石)...
2015 교향악 축제 총평
놀라움과 감동을 낳은 2014 행...
제10회 세계 합창 심포지엄 ...
2014 교향악 축제 총평
현장음악의 비평적 두 논제
신선한 감동과 기대감을 준 두 ...
Sop.강경해의 나비부인 연주...
공감가는 메시야를
‘가시관을 쓴 테너’...‘금관...
최고의 가치 창출을 한 두 공...
최고의 악단 위상을 제대로 보...
신명나는 타악기 음악미학을 낳...
임주섭 창작 오페라 「중개사...
이지석 호른 독주회
2013 여수합창제 총평
한국오라토리오싱어즈 제30회 정...
창단 40주년기념 합창 갈라 콘...
친구같은 음악인을 꿈꾸는 피아...
섬세한인천문예관 ‘커피콘서트...
엠블호텔 킨텍, 오픈 기념 오...
크라스노야르스크 심포니 오케...
김규현의 합창음악 해석법 탐구...
합창 현장의 名 합창지휘자 김...
화합과 통일을 일군 국립합창...
시립음악단체장(지휘자)들의 겸...
문제로 퇴출(退出)된 음악교수...
풍요(豊饒)속의 음악계, 그 득...
선배님! 저질음악 굿판을 더 ...
사이비 평론가의 공허한 이중성...
국립합창단은 진정한 국립(國立...
벨기에 방송 "한국음악인들의 ...
친구같은 음악인을 꿈꾸는 피아...
오피니언면의 변신 “세상의 외...
울산 스타일’은 왜 없는가
바흐 ‘바디네리’ 관현악 모음...
☆오피니언월드 인터넷 설문조...
예체능 교육 혁신은 삶의 품격...
사전 소통의 노력을 가져 보시...
브라스뉴스 사이트를 선보이는 ...
제10회 아창제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19-02-18 11:07
제 10회 아창제
(ARKO 한국 창작 음악제)를 듣고
-양악 부문-
글/김규현(前 한국음악비평가협회 회장·작곡가)

한국 문화 예술 위원회가 매년 창작관현악곡을 공모해 심사를 거쳐서 선정된 곡을 연주하는 아창제(ARKO 한국 창작음악제)가 금년이 10회를 맞았다. 국악 부문과 양악 부문으로 나누어 열리는데 양악 부문을 들었다. 응모된 40 여곡 중 6곡을 선정해서 연주된 자리(2월 10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였다. 선정된 작곡가들은 4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했다. 특히 작년에 이어 두 번씩이나 응모해서 선정된 80대 작곡가 박준상의 열정은 대단해보였다. 60대 여성 작곡가도 있었다. 대체로 작품 선정은 의미 있게 잘했다. 작품성과 예술성을 엿볼 수 있었고 관현악의 조직력(structural orchestration)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대적인 표현접근도 각자 나름대로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작곡 배경이나 곡해설의 작의(作意)와는 달리 音(소리) 구성과 연계성(composition of sound and connection) 그리고 소리의 디자인(sonic design) 등이 그럴 듯한 해설과는 동상이몽(同床異夢) 현상을 보여준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음악을 끌어내는 표현력이나 구성력들은 매우 우수했다. 그러나 작가가 작품에서 이야기하려는 message가 너무 평범하고 다양성과 콘텐츠가 결여된 곡들이 여럿 있었다. 조진옥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파사칼리아”, 한정임의 “피아노 협주곡 숨” 등을 보면 그렇다. 조진옥 곡은 파사칼리아 양식접근은 우수해보였으나 다양성 결여나 표현 양상의 획일화 문제 그리고 종결부의 완결성 빈약 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이 보완의 필요성이다. 한정임 곡은 한국의 민족주의 음악 창작 접근을 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어 보였으나 협주곡 양식 접근은 서툴러 보였다. 특히 피아노 음형(piano figuration)이 단조롭고 보편화된 형태라든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와의 구조적 협력체계의 빈약성 등을 보면 그렇다. 소의 한국적 창작을 할 때 국악의 원형 노출을 지나치게 하면 예술성이 떨어져 보이고 유치하다. 바르톡 식의 여과된 창작이 필요하다. 한정임의 피아노 협주곡은 창의성 있는 새로운 창조(創造)라기보다는 정악(正樂)풍의 흥(興)을 더 많이 볼 수가 있었다. 보편화된 흥을 흥으로 그대로 노출하지 말고 흥을 높은 예술성 있는 한국음악으로 승회시키는 작업을 했으면 더 좋을 성 싶었다. 이 반면에 박준상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Mantra’은 비록 15분짜리지만 협주곡 양식 접근을 잘 보여주었다. Cadenza도 있고 관현악과 독주악기와의 대화도 있다. 피아노 유형도 상당히 피아니스틱하고 협주곡으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전 후반과의 음악적 음향의 일관성이 떨어져보였다. 전반부와 상반되는 음향 처리를 했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삽입한 민요 ‘옹헤야’는 곡 제목, mantra(기도, 주문), 의미성과는 어울리지 않아보였고 산만해보였다. 박준상은 시대성은 보여주었으나 창의적인 창작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내가 한국적으로 작곡하지 않는다면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니지요.” 라고 작곡가가 말했듯이 그는 헝가리 작곡가 바르톡과 같이 박준상 식의 창조(創造)가 전제된 정체성 있는 한국적인 피아노 협주곡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Mantra’는 이런 면에서 창작 접근이 제대로 안 된 곡이다. 그가 말했듯이(한국적으로 작곡하지 않으면) 진정한 한국 작가라면 오늘날 현존하며 살아서 세계 어디서나 연주되고 있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라든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그리고 바르톡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등을 뛰어넘은 한국 협주곡을 만들어 보여주었어야만 했다. 서양음악의 수입상이나 아류에 머물지 말고 말이다. 나머지 작가들(김은성, 김권섭, 조우성)은 기대주임들을 보여주었다. 곡(내용)을 전개해가는 구성력이 살만했고 관현악 작법도 뛰어나보였다. 특히 김성은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차가운 흐름’은 스케일이 커보였고 짜임새(texture)도 우수했다. 그러나 특수한 음향 창출은 돋보였으나 곡이 평범해 보인 것은 흠이었다. 그리고 작가의 강한 message 전달이 좀 더 확실했으면 좋을 성 싶었다. 이를 위해서 climax 설정도 생각했을 법도 했다. 김권섭의 ‘봄의 전령 제피로스’도 앞서 언급했던 김은성과 동일한 평가를 해야겠다. 그 외에 시대적인 근대 양식 접근이나 우수한 구성은 살만했으나 곡 전체의 음악적 흐름과 내용이 좀 더 통일성이나 일관성 있게 기승전결(起承轉結)을 가졌으면 더 좋을 성 싶었다. 그리고 표현향상들이 좀 더 다양했어야만 했다. 작가의 강한 message전달 기능으로서 후반부에 climax 설정을 했더라면 음악적 가치가 더했을 텐데 그러지를 못해 평범한 곡을 벗어나지 못했다. 조우성의 ‘나비효과Ⅱ(Butterfly effectⅡ)’는 음악을 끌어가는 지구력이 커보였고 음향이 독특해서 돋보였다. 일종의 천체음악(The music of the spheres)같은 인상을 준 음향이 살만했다. 음악적 구성이나 짜임새도 우수했다. 개성이나 창의성도 보여주었다. 음악적 전개나 표현양상들도 신선했다. 문제는 외형적인 우수성에 비해서 음악적 흐름을 일관성이게 끌어가 종결부에서 완결성 있는 종지 형태를 분명히 설정하지 못한 점이었다. 음악은 소리(音)로 된 건축이라는 면에서 소리(音)의 디자인(Sonic design)이 허상(虛像)이 아니라 진상(眞像)으로 구체화되어야 message가 전달될 수가 있다. 조우성의 ‘나비효과Ⅱ’는 이럼에도 불구하고 발표곡 6곡 중에서 가장 재연의 가치성을 가진 우수한 곡(excellent piece)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밖에 발표된 작품들은 그런대로 무난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작품들 대부분 서양음악 작품의 아류를 벗어나지 못했고 한국적인 창작을 했더라도 작가만의 정체성 있는 창조적인 작업 태도도 보여주지 못했다. 단지 충실한 양악의 수행자의 면모만 보여준 것이 대부분이었다. 개성(personality)이나 창의성(originality) 그리고 창조성(creativity)을 보여준 작가는 전무했다. 그러나 한국적인 흉내를 낸 몇몇 작품은 한국 음악의 정체성을 구현해보려는 노력이 살만했다. 경계해야할 것은 지나치게 국수주의적인 창작을 고집하는 일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란 논리는 21세기의 지구촌화된 오늘날에 타당성이 없는 억지 주장이다. 이번 두 작품(한정임, 박준상)이 한국적인 면모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으나 19세기 후반에 일어났던 민족주의 음악 풍토를 새삼스럽게 오늘날에도 한국적 운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망각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이제는 아창제를 열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아창제의 지향성 없이 선정된 곡을 발표나 해주는 수준에서 벗어나 한국 관현악곡의 정체성 수립을 해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발표된 곡을 모아 곡 집이나 내고 CD를 출반해서 보관하고만 있는 박물관 같은 행태를 벗어나 재연의 기회 부여를 해주는 일을 많이 해가야 할 것이다. 발표된 곡들이 살아서 청중들을 가까이 다가가서 한국 음악임을 확인시켜주어야 한국 창작 음악이 활성화가 될 수 있다. 끝으로 부탁은 한국 작곡가들은 열정만을 보여주지 말고 자신들의 창작 음악이 세계적으로 살아 연주되고 있는 걸작(masterpiece)들과 비교해서 자신들의 곡 쓰기 문제를 직시하고 그 작품들 수준을 뛰어 넘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자신만의 창조(創造)가 전제되어 있는 작품을 내놓으라. 베토벤이나 말러의 교향곡 1악장 규모도 안 되는 단편적인 곡을 써가지고 대가인 척하며 거드름을 떠는 것은 허상이고 허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