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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력한 간판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16-12-26 18:23

무능력한 간판(學閥)보다 능력(能力)을 더 인정하자

 

/ 김규현(본지주필,

작곡가, 한국음악비평가협회 회장)

 

사회는 변한다. 간판 신드롬에서 벗어나라

어느 대학(STU) 교수(L)가 안식년(安息年)이 돼서 독일에 1년간 머물면서 개인 레슨을 받고 대학 구경을 하고 돌아 온 일이 있다. 그 뒤 그의 작곡집 뒷면의 이력과 작곡 발표회 프로그램에는 무슨 음대(EF) 디플로마(diploma) 취득 운운 한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언어 소통도 제대로 안된 그가 그 곳 유학생(K)의 통역 덕분으로 레슨만을 받고 와서 디플로마 취득이라니 우스운 일이다. 이것은 당시의 유학생한테 직접 들은 일이다. 이런 자들이 귀국하면 외국 갔다 온 티를 더 낸다. 이런 것은 그들의 작곡 발표회나 연주회 프로그램, 그리고 작품집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당사자의 문제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간판(학벌) 위주의 사회 풍조가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선진국 같이 능력 위주의 자리 매김이 제대로 안된 원인이 있다. 최근에 소위 일류대의 레테르(Label=Letter)나 외국 음대의 박사 소지자들이 그 간판에 비해 능력 저하 현상이 많이 노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현상을 볼 때 능력 위주의 사회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고 있다. 그것(學閥)은 일개 간판 기능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음악계가 만연되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무능력(無能力)하면서 일류 음대를 나온 레테르(Label) 덕분에 실력 있는 음악가들이 그 레테르로 말미암아 밀려나는 서글픈 현상이 되 가고 있는 것이 문제다. 소위 엘리트(Eilte) 집단체 형성이 이래서 존재 한다. 교육부(敎育部)가 최근에 교육 개혁 제2탄을 발표한 일이 있다. 능력위주의 교육이 그것이다. 이것을 보면 능력(실력) 위주의 사회 형성이 머지않아 올 것 같은 기분이다. 신나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음악은 뒷전에 두고 간판만을 내세워 자신의 무능력함을 합리화 시키려드는 사람은 음악행위 그자체도 별 볼일 없다. 간판이 먼저인가 능력이 먼저인가를 음악인들은 이제라도 생각해야 될 것 같다.

세계가 일일권이 되 가고 있고 세계의 유수한 연주 단체들과 훌륭한 지휘자들이 속속들이 내한 공연을 갖고 있는 것이 작금이다. 겨우 몇 년 외국 유학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국내에 들어와 대가(大家)인 척하는 일부 음악가들을 볼 때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음악가들은 단명을 쉽게 한다. 우리는 최근에 귀국한 합창 박사 지휘자들이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를 하지 못하고 어정쩡해 보이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가 있다. 아까운 일이다. 이 사회가 그들을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책임이 더 크다. 實力없이 간판만 내세우고 날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몰라보게 변했다. 박사학위 따위도 거들떠보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실력 없는 박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열린 마음의 진실한 음악행위 필요성

자신의 음악이 최고이고 남의 음악은 최하위 음악이라고 말하는 음악가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절대주의자다. 이기주의자라고 하기에는 그는 너무 非人格的일 때가 많다. 그렇다고 그가 음악 전반적인 것을 섭렵한 음악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려 보인다. 단지 그는 경험과 자기 판단에 의해서 대가(大家)까지 왔다고 자부하고 있고, 사회에서 그렇게 대접받으려고 한다. 이런 음악가들은 대화와 토론하기가 매우 어렵고 音樂 만듦이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음악계가 소홀히 하는 것이 많지만 그 중에 진실한 대화와 토론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서로의 음악을 비판해 주고 조언해 주는 일이 드물다. 비판을 가하면 죽일 놈이고 대화가 단절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닫아 놓고 음악행위를 한다. 음악 만듦도 답답하게 들리고 그렇게 느껴진다. 그 반면에 열린 마음의 음악가들의 음악은 그 반대 현상을 볼수 있다. 개방화 되 가고 있는 오늘날, 음악인들이 열린 思考를 갖고 열린 음악 행위와 만듦을 실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자세라고 본다. 그런데 국내 음악인들 대부분은 어떤 직책이나 명예 그리고 名聲에만 집착하지 자신의 진실한 음악을 들려주는 일은 소홀히 하는 것 같다. 실력 있는 유망주 신인 음악가가 완벽에 가깝게 음악 만듦을 하면 설익었다고 비판이나 하고 인정하려 들지를 않으려는 것이 기성세대들인 것 같다. 음대 학장이나 과장 그리고 교수라는 직책을 가진 들이 음악 행위와 음악 만듦에 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하려 드는 不合理性과 모순을 연출하는 것이 일부 기성 세대 음악인들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일반 청중들 의식도 동일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자기 PR 시대이고 자존심 대결의 시대라고 하지만, 프로(professional)로 자처하는 음악가들이 인위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合理化시키고 아무 부끄럼도 없이 음악행위를 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우리는 이제 이런 억지 음악가들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간판보다 능력을 인정하자

외국유학에서 학위나 디플로마를 취득하고 들어왔다고 반드시 완벽한 音樂 만듦을 보장한다고는 볼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정확한 음악이 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론 분야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흔히 외국에서 학위나 디플로마를 들고 오면 어떤 특권 의식의 티를 내려는 유학파들을 보게 된다. 이것을 대부분의 국민들이나 음악계는 비판 없이 수용하고 선입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 귀국한 음악가들을 절대시하는 경향이고 그런 대접을 귀국 음악가들이 받으려 하는 것 같다. 이것은 후진국의 그릇된 고정 관념과 선입견의 산물이다. 학위(박사)나 디플로마(자격증)는 한 音樂家의 데뷔 申考書에 불과한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한 音樂家생애를 보장해 주는 보증 수표는 결코 아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능력자는 고정 관념의 틀을 깨부수고 큰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뭘 좀 안다고 으쓱대지도 않고 위선적인 행각도 안한다. 그리고 기회주의적인 것도 없다. 생각이 스피드(speed)하고 신선하다. 번득이고 규모가 크다. 어떤 면에서 보면 포괄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 능력자는 음악 자체가 다르다. 자기 철학과 번뜩이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절대치에 따른 선입관도 없다. 외국 간판이 문제가 아니다. 오직 實力에 의한 음악 행위 그 자체일 뿐이다. 자기의 쥐꼬리 만한 논리만을 주장하는 피해망상증 환자 같은 반푼이도 아니다. 좌우지간 능력자는 큰 그릇이다. 그리고 생각을 조석(朝夕)으로 바꾸는 소인배(小人輩)도 더 더욱 아니다. 고정 관념과 선입관 등을 올바른 음악 만듦을 위해서 과감히 깨부수는 행동파 사고다. 간판이 문제가 아니라 음악이 되느냐가 문제다. 분명한 자신의 음악 철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능력자는 음악 그 자체로 승부를 걸고 음악만을 이야기로 들려준다. 그렇지 않은 자는 음악가로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오늘날 많은 음악가들은 간판사대주의 사고에 빠진 감이 없지 않다. 실력만으로는 사회가 인정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선진국 특히 독일마냥 능력인정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실력있는 음악가 우선주의 사회가 오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21세기 최첨단의 글로벌 사회답게 우리도 이제는 간판(학벌) 신드롬의 사대주의 사고를 버리고 능력위주의 사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실력있는 음악가들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