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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8. 08 토)
충격
오페라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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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1953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20-07-20 13:20
오페라 1953 대본 이성호, 작곡 이재신

오페라 1953은 201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오페라 부분에 선정되어 올해의 오페라라는 타이틀로 2018년 3월에 강동아트센터에서 초연되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초연까지 꼬박 2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오페라를 작곡하면서 전체 진행을 돌이켜 보면 오페라는 참으로 작곡가의 생리와 맞지 않는 장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많은 사람과 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뒷담화를 해보려고 한다. 오페라를 제외한 모든 작곡은 골방에 틀어 박혀 곡을 쓰고 연주자에게 악보를 전해주면 그것이 끝인게 작곡가의 일이었다. 어려움은 단지 ‘어떻게 더 좋은 작품을 쓸까’하는 고민 이 외에는 없다. 그러나 오페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립과 의견충돌의 연속이다. 모든 과정에서 건건이 격어야 하는 어려움이다. 초반에는 대본 작가와 씨름을 한다. 그 ‘씨름’이라는게 말이 씨름이지 작품을 뒤엎는 단계 직전까지 가는 짙은 농도의 갈등이다. 우여곡절 끝에 작품이 완성되면 다음은 지휘자와의 갈등이다. 그 다음은 연출과의 갈등, 그 다음은 성악가와의 갈등, 그 다음은 빗발치는 수정요구와의 대면....
모든 사람들이 작곡가만 보면 들들 볶는 지옥의 경험을 하게 된다.

오페라 1953에서는 두 가지 사건이 기억에 남아있다. 오페라 1953을 준비하면서, 역사적 대가로 칭송받는 작곡가도 피해갈 수 없는 이야기를 내가 겪게 되는 역사(?)를 경험한 것이다. 흔히 ‘오페라 뒷 이야기’에 등장하는 연출 또는 성악가와 마찰에피소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단골 이야기다. 그런데 바로 그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마가 떠요!”
연출이 내게 한 말 중 유일하게 기억에 각인된 말이다. 여러 번 들었지만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처음 듣는 말이기 때문이다. 뉘앙스는 친절한 느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않좋은 느낌을 받았고 심지어는 뜻도 모르면서 불쾌해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중간에 썰렁해지는 구멍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연출의 입장에서는 어느 한 부분도 애매한 부분이 없이 극적으로 끌고 나가고 싶었겠지만 내가 규칙으로 삼은 작곡기법을 무시하고 수정을 할 수는 없었다. 서로 티격태격 상대를 설득하려고 해를 썼다. 몇 시간을 통화하고도 서로 설득이 안됐다. 결국 우리는 어릴 때 땅따먹기 하는 식으로 서로 양보할 부분을 정해 몇몇 부분은 수정없이 가는 조건으로 연출이 원하는 부분을 삭제했다. 작곡가 입장에서는 적잖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나고 보니 심지어는 연출의 말이 옳기도 했다. 연출 말 잘 들을 걸 하는 후회도 잠시 했다.

또 하나의 마찰은 성악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시에 곡을 붙이는 가곡과 다르게 대본에 곡을 붙이면 캐릭터와 장시간 씨름을 하게 되기 때문에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공평하게 대본에 쓰인 대로 작곡 진행을 하더라도 선율에 정성을 쏟는 아리아는 내가 애착이 가는 캐릭터의 노래다. 반대로 의도적으로 외면을 하는 캐릭터도 있다. 바로 그 마음을 해당 캐릭터를 소화하는 성악가에게 들켰다. 사실 한창 리어설을 진행하는 중에 성악가들의 전화를 받는 것은 ‘죽음의 사자’의 전화를 받는 것처럼 두렵다.

“제 선율은 왜 이래요?”

거짓말 같지만 실제로 내가 전화를 통해 들은 말이다.
다른 선생님들의 아리아는 다 자기 아리아보다 아름다운데 자기 아리아는 왜 이렇냐는 거다. 처음에는 황당하여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럼 아리아 하나 더 써드리면 되나요?”라고 받아쳤다. 그리고는 섭섭함이 몰려왔다. 나는 나름 신경을 쓴다고 주역이든 조역이든 적어도 독립적인 아리아 하나씩은 배분했는데 그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아서다. 하긴 성악가가 다른 사람의 아리아까지 신경 쓰겠는가? 본인의 아리아가 종요하겠지. 사실 그 캐릭터는 비중을 줄이려고 신경 써서(?) 기름기를 빼는 중이었는데 성악가가 그걸 간파한 듯 했다. 미안한 마음에 딜(Deal)을 권했다. 제대로 된 아리아가 들어갈 자리는 없으니 1분정도 정성을 들인 선율을 하나 써드리겠다고. 그리고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없던 선율을 넣어드렸다. 근데 그게 효과가 아주 좋았다. 연주를 마치고 그 분께 전화가 왔다. 자기가 그 말 안했으면 어쩔 뻔 했냐고. 이번에도 성악가 말이 옳았다. 내가 생각해도 그 장면은 참 극적으로 잘나와서 만족스럽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작품이 성장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작품에서 협업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갈등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또 다른 갈등이 나를 힘들게 했다. 갈등은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발생한다. 결국 갈등이나 마찰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응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