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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평론가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17-11-02 14:52

사이비 평론가와 저질 평문 우습지 않은가

-음악평단을 비판함-

 

/ 김규현(한국음악비평가협회 회장,

본지 주필, 작곡가)

평론가와 평문(評文)의 문제점

한국음악 평론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국내평론계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듯한 함량미달과 수준 미달의 평문을 양산하고 있고 소위 음악평론가로서의 자격미달자가 부지기수(不知其數)로 판을 치는 듯한 인상을 떨칠 수가 없다. 후진국의 한 병리현상을 보는듯한 기분이다. 누구보다도 비평의식과 소신 철학이 필요한 평론가들이 잡지사와 일간지의 시녀(侍女)노릇이나 들러리 향각을 해주고 몇 푼 받아먹는 매문행위(賣文行爲)를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더욱 서글프게만 느껴진다. 이런 평문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단지 주례사나 찬양사로 변질되는 예는 잡지나 신문의 평난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가 있다. 평문이 올바른 비평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평자(評者)의 비평 의식 자체가 전환되어야 할 것이고 구체성과 논리성이 내재한 분석과 논평 즉 정실 비평문(精實 批評文)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런데 국내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비평하려는 음악 그 자체도 제대로 인식이 안 된 상황에서 감상문 내지 에세이(essay) 수준의 인상 비평문을 쓰는데 문제가 있다. 적어도 평론가라면 평론가답게 자신들의 문제점을 점검 수정하고 자아의식을 통한 평문다운 비평문을 써야 함은 상식이다. 자신이 평론가임을 내세워 권위의식과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빠져 안하무인격으로 거드름을 떨어서도 안된다. 요즈음 음악인(연주자, 작곡가)들과 평론가 사이의 괴리 현상과 불신 풍조가 고조된 것은 자격미달 평론가들의 저질 평문이 주원인이 되고 있지만 평자들의 상업적인 자세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도대체 평론가의 기능과 책임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아마 음악인들과 청중들을 위한 가교적 순기능이라고 볼수가 있다. 음악자체도 제대로 인식이 안된 사람이 글발(文章)을 좀 쓸줄 안다고 아무 단계도 없이 쉽게 평문을 쓰고 평론가가 되는 기현상은 우리만의 문제인 것 같다. 적어도 평문내용은 음악적 접근이 80퍼센트 이상은 논평되어야 할 것이다. 연주곡의 해석 유무와 작가적 접근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없이 피상적인 글장난이나 레슨(Lesson)을 하려 드는 상식이하의 짓을 진정한 평론가라면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공식적으로 평문을 쓰고 있는 전국의 평자들은 약 20여명이다. 국내 평론가들의 발표 지면은 주로 월간 음악잡지로 국한 되고 있고 일간지의 고정평란은 선진국에 비해 전무(全無)하다. 후진국의 비평문화의 역조현상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도대체 한국 음악평론가 협의회나 협회 그리고 한국 음악 비평가 협회 등 평단의 단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진정한 평론가와 사이비 평론가의 정체

진정한 음악평론가는 존재한다고 보는가.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란 물음에 우리는 쉽게 답하지는 못한다. 국내 평론가들의 탄생은 주로 잡지사 자체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질 때가 많고 일간지의 신춘문예를 통해서 등단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어떤 단계를 밟고 평론가가 됐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내용 있는 정실평문을 쓸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몇 편의 평문을 쓴 경력을 가지고 자칭 음악 평론가 행각을 하고 있는, 웃지 못할 행태를 이제 그만 할 때도 됐다고 본다. 평론가는 음악계의 왕()도 결코 아니고 또한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평자는 음악인들과 청중 사이의 미래지향적인 좋은 안내자가 되어야만 한다. 평문을 쓰지 않고 음악평론가 대접을 받는 벙어리 평론가들을 현존하게끔 신문과 잡지가 명칭을 달아주고 있는 기현상을 볼 때 안타깝다. 언론의 책임의식이 요구된다. 평론가들이 관변의 바람막이나 하고 음악계를 기웃거리며 프로그램 주례사나 격려사를 써주어 몇 푼 받으면서 제대로 된 평문 하나 볼 수 없는 관변평론가를 진정한 평론가로는 볼 수가 없다. 음악계는 사이비나 얼치기 평론가를 이래서 퇴출시켜야 되고 그들은 음악계를 스스로 절필하고 사라져 주어야 음악계를 돕는 일이다. 평론이 평론가들의 것만은 아니다. 그것의 존재가 음악인과 청중이 없을 땐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평론의 올바른 인식을 위해서 평자들의 노력없이는 불가능하다. 평론이 무엇이고 왜 평론이 존재해야 되며 그 기능이 어떤 것인가를 인식시킬 의무 또한 평론가들에게 있다. 최근에 들어와서 쉽게 된 평론가들의 나약성과 한계성이 쉽게 노출되고 있는데 그것은 음악적 논리기반이 빈약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저질 평론과 사이비 평론가를 낳게도 한다. 평론가의 길이 자신들의 전공을 제대로 못 살린 사람들의 최후의 돌파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은 저질 평문과 사이비 평론가의 근원적인 문제를 낳게 된다. 진정한 전문 평론가는 음악인들을 레슨(Lesson)하려 들지 않고 음악만을 평한다 인격과 교양이 갖추어져 있다 구체와 논리성이 내재한 분석적 음악 논평을 우선으로 한다 비평 논리에 관한 자신의 논문과 저서가 여러 권 있다. 그리고 자아 인식된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서 전문 평문을 쓴다. 물론 이것이 저부는 아니다. 그는 학생들의 감상문 수준의 인상 비평문이나 에세이(essay) 같은 치졸한 곡해설류의 평문을 안 쓴다. 일부 상업주의 잡지나 신문의 하수인이 되는 일은 결코 생각할 수 없다.

 

평단(評壇)의 할 일과 평론가들의 지향점

평론가들이 할 일이 있다. 올바른 평문 양식의 이론 체계 수립이다. 그동안은 타국 이론가들의 논리를 추종하는 데만 급급했지 자신들의 논리 체계는 전무였다. 평문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고민과 자기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가에 대한 자각도 없이 사회성 발언을 해 인기나 끌려고 하는 소인배적 속성을 가진 상업적인 평자도 많았던 것은 부인할 수가 없는 일이다. 학문이 고도화되어 가고 있고 전문화되어 가는 현시점에 자신들의 평문이나 위상 정립은 제쳐 놓고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감각적 사고의 행태를 보여서야 되겠는가. 최근에 단계적으로 학문을 닦고 평단에 등단하는 젊은 평자들을 볼 때 마음이 든든함을 느낀다. 그 반면에 기존 평론계의 의식이 퇴색화되어가고 안주해가는 모습을 볼 때 격세지감을 갖게 하고 있다. 이제 음악계는 전문 평론가와 그렇지 않은 사이비 평론가를 식별할 줄 알아야만 한다. 더 이상 음악인들과 청중들이 사이비 평론가들한테 우롱을 당하지 않고 글장난 공해의 해독에서 면하기 위해서다. 논평에 대한 반비평(반론)도 제기해 음악적 논쟁을 벌여야만 할 것이다. 토론과 논쟁이 살아 있을 때 음악계는 발전할 수가 있다. 일부 음악잡지들이 자사(自社)가 주최하는 연주회의 평자명을 가명(假名)으로 해서 근거도 없는 과찬을 해주는 작태라든가 이를 돕는 공범적인 평론가(L)는 없어야겠다. 이래서 음악인들과 청중들은 깨어 있어야만 한다.

끝으로 평단의 합일체(合一體)가 있기를 촉구한다. 비평가협회는 무엇이고 평론가협회는 무엇인가. 치졸한 이데올로기(Ideology) 싸움을 집어 치우라. 제발 평론가들은 한국이란 토양 위에 음악평론학이나 음악미학을 어떻게 체계적인 정립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길 바란다. 자격 미달의 평론가들에 의한 저질 평문은 이제 그만 만나고 싶다. 국내 음악인들은 자신들의 음악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위 저질 평론가들한테 논평 받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평단의 자기개혁과 반성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평론행위가 자신들의 무능력한 전공을 합리화시키는 도피처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평론문은 자신의 명예를 대신해 주는 사치품이 결코 아니다. 자신들의 보잘 것 없는 작은 거울에 자신만을 비추어 보는 편협된 사이비 음악 평론가는 이제 없어야겠고 사라져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