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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어머이 아라리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20-05-14 12:53
오페라 ‘어머이 아라리’ 의 이런 저런 뒷이야기

내가 극음악에 꽂힌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일 것 같다.
TV도 없었던 시절. 장터에 서커스단이나 유랑극단이 올라치면, 공연장, 그 천막 안에 들어가기 위해 정말 치열한 몸싸움을 해야만 했다. 개구멍으로의 입장이 그렇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작은 몸이 들어갈 수 있는 틈새는 언제나 있었다. 이수일과 심순애 공연 때는 정말 몸이 짜부라지는 줄 알았다. 어쩌면 그리도 촘촘히 천막 못을 박아놨는지...
개구멍 비집고 들어가느라 옷도 엉망이지만 묶었던 리본이 없어져 머리는 다 헝크러져 산발귀신. 극에 빠져 슬퍼서 울고 리본 잃어버려 혼날까봐 울고..
지금 생각하니 참 웃을 맛 나는 행복한 추억이다.

‘어머이 아라리’는 2012년 국립오페라단 창작오페라 팩토리사업에 ‘아리 아리랑’으로 선정되어, 2013년 초연이후, 어머니로서의 굴곡진 삶을 산, 두 모녀의 이야기이므로 ‘어머이 아라리’로 제목을 바꾸어 2015년 8월, 광복70주년 기념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오페라 콘서트형태로 재공연 되었었다.
이 한편으로 오페라작곡가라고 하면 민망하지만, 나름 대본부터 작곡까지 그 당시 쓸 수 있는 힘을 총동원했다고 할 수 있다.
작곡배경, 재미있는 에피소드 등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우습게도 체력을 위해, 매일 뛰던 어둑한 동네학교 운동장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났다.
오로지 오페라 한번 써보겠다고, 내가 언제 오페라를 공연해보겠냐며 이 기회밖에 없다며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얼마나 힘들어 죽겠으면 체력을 위해 매일 뛰었을까.
내게 있어서 오페라는 대본, 작곡뿐 아이라 체력적으로도 그만큼 힘든 작업이었다.

1. 글과 대본 이야기

예전엔 군인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다. 간혹 답장이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중1. 어느 날. 해변 가의 이쁜 소라그림과 함께, 짧은 장콕토의 시가 적혀 있는 편지를 받았다.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닷가 노래소릴 듣는다.
-장콕토-

아들을 키워보니 22살도 어미 눈엔 아저씨가 아니라 애기로 보임을 뒤 늦게 알게 되었지만 우연한 이 답장으로 거의 7-8년동안 편지를 나누게 되었던 거 같다. 중. 고교 시절에 오갔던 엄청난 양의 편지들과 일기를 쓰던 습관이 나름 글에 대한 욕심을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작품이 선정될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본료가 만만치 않았을 뿐더러, 꼭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에 대본을 내가 직접 쓰는 무리수를 두었다.

어머이 아라리는 재미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다.
이 재미없는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야할지,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잠시 생각이 어수선해진다.
“엄마 얘기해도 돼?”
퇴색하여 흐릿해진 영정사진 속에서 대답 없이 잔잔히 웃고만 계신다.
“너는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전쟁이 나면 머리부터 박박 깎고, 남자 옷을 입거라”
엄마는 가끔 위의 말을 나직히 힘을 주어 말하곤 하셨는데 난 그 말 듣기를 참 싫어했다. 특히 예쁜 원피스를 입혀주면서 왜 그런 얘길 하시는지 속이 상했다.
일제 강점기. 6.25전쟁.
자식 셋을 열병으로 잃고, 화병으로 남편까지 잃은 엄마의 엄마. 우리 할머니.
엄청난 풍랑에 맞서 살아내야 했던 모녀. 우리 부모님세대들의 이야기. 극화를 위해, 지인들의 여러 조언을 받아, 독립운동가, 위안부를 등장시키고, 존중받아야 할 인권. 생명 등 역사의 아픔들을 부족한 글 솜씨로 써 나가는데, 전개에 한계를 느껴, 초연 후, 한국희곡작가협회 제3대 이사장이셨던 김태수님께 희곡수업을 사사, 한국희곡작가협회 교육원 20기 수료하고, 내용을 재정비하게 되었다.

2. 작곡과정과 Orchestration

대본과 가사를 직접 쓰고 있었기에 작곡하는 작업은 훨씬 수월했다고 생각한다. 대본가나 작사자가 따로 있었다면 협업의 과정에서 분명 일치를 못 보는 경우가 있어 진행이 순조롭지 못함이 분명 있었으리라. 실제 협업하는 중간에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해 결과물을 내지 못하는 경우를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작곡을 하게 된 이후, 기악곡보다 성악곡을 많이 썼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오페라를 쓰기 위해서였고, 서울팝스오케스트라 편곡자로 한국에 계셨던 빅또르선생님께 몇 년간 Orchestration 개인수업을 꾸준히 받아왔던 이유 또한 오페라를 쓰기 위해서였다. 모든 준비의 목표가 오로지 오페라를 쓰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고, 목표가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는... 나도 언젠가는... 하면서 오페라는 늘 꿈꿔왔던 나의 무지개였던 것이다.

3. 공연 전. 후

2013년 2월 고양아람누리에서의 초연을 준비할 때의 나는 한마디로 공연에 관한 모든 부분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정말 후회가 되는 일도 많고, 화가 나는 일, 죄송한 일도 많다.
나는 항상 왜 그리 깨우침에 느린 것일까. 그런데다 엉뚱한 고집이 있어 한번 꽂히면 오로지 그것만 보인다.
축소시켜 제작비 아껴야한다는 조언이 귀에 들리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그럴싸하게 보이고픈 교만이었을 수 있으나, 내가 언제 또 이런 공연을 해 볼 수 있을까, 일생일대 처음이자 마지막일거라는 생각에서 좀 더 큰 무대에서 내 음악을 듣고 싶었고, 보고 싶었다.
공연은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와 주셔서 무사히 감사히 끝났으나, 공연 이후, 재공연의 기약이 없는 터라 보관료문제로 무대 제작물들을 결국 모두 폐기해 버려야했을 때의 심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었고, 오페라공연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공연.
재공연에 있어서는 어찌 말해야할까.
국립오페라단 창작오페라 팩토리사업엔 그동안 선정된 작품 중에서 재공연을 지원해주는 사업이 있었으므로, 해방 70주년이 되던 2015년. 8월. 세종문화회관을 미리 대관해놨다.
선정된 작품들 중에서는 재공연지원금을 주는 사업이었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까지 대관해 놓은 터라 지원받을 수 있다는 나름의 확신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해 지원사업의 내용이 바뀌어, 창작오페라 팩토리사업에 선정되지 않았던 작품도 신청가능해진 것이다.
결국 도산 안창호가 재공연에 선정되었고, 나는 정말 많은 고심 끝에 공연을 포기하려했으나, 공연을 해야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남편의 적극적 권유와 지원으로 1회의 콘서트형태로 공연을 끝냈다.
콘서트형태였는지라 많은 부분을 생략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래도 참 감사한 일은 초연보다 많이 정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공연이 거듭 될수록 완성도도 그만큼 높아지겠지만
오페라...
무대까지 올라가기까지,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오페라 앞에서 정말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생각하면 역시 1회성으로 끝날 거면서, 성공도 못 할 거면서 그게 뭐라고 그리 해보고 싶었을까싶지만 그땐 정말 너무나 간절했던 꿈을 이뤄보는 터라, 생각들이 중심을 잃고 귀는 팔랑 귀가 되어버려, 결과 예측은커녕,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최선의 선택을 가릴 줄도 몰랐던 거 같다.
세월이 너무 빠르니 그 일도 벌써 5년 전, 7년전 이야기.
그 이후 오페라공모라던가, 지원사업이라던가 하는 내용을 뒤져보지 않았다. 열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다른 쪽에 꽂혀있기 때문이다. 사랑도 움직인다는데 음악의 관심도가 왜 안 움직이겠는가. 음악의 꽃밭. 여기서 저기서 좀 놀다 오페라로 다시 가고파지면 갈 것이다.

한국 창작오페라의 활성화와 세계적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어머이 아라리’의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한정임 프로필
중앙대음대 작곡과, 동대학원 석사
폴랜드 국립 쇼팽음악아카데미 석사,
러시아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 박사(DMA)
제 17.18회 서울음악제 가곡, 합창, 실내악부문입상
국립오페라단 창작팩토리 오페라 「아리 아리랑」우수작품 선정.
제 8회,10회 ARKO 한국창작음악제 피아노 협주곡 「아라리I」「숨」 선정
현. 한뮤직컴퍼니대표. 중앙대 작곡과 강사. 한국작곡가회 부회장. 한국가톨릭작곡가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