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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합창 크리닉5
작성자 grimy19951995
작성일자 2023-05-31
조회수 106

합창 음악 클리닉 5

문일근

전 회에서의 문제점, 악보 음악의 개인적인 문제는 음악 미를 인식케 하는 방법으로 해결을 할 수가 있다. 바로 악보에서 들리는 음악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아니라 음악 미의 조화성이 전면에 드러난다. 악보 속에서 느껴진 대로 연주할 수 있다면 그건 문제가 아니라 바로 해결이고 연주력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열리기도 한다. 즉 악보 음악이 머릿속으로 느껴지는 음악이냐 아니면 자신이 그동안 연주(노래)했던 방식으로 들리느냐의 차이인데 그 차이는 물리적 인식이냐 음악성적 인식이냐로 귀결되기 때문이고 발전이냐 정체냐의 문제이고도 하다. 여기서 물리적 인식은 진동론이 음악 전면에 대두되는 경우고 음악성적이란 즉 연주사적으론 피거리즘으로 물리적 현상을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바로 음악의 아름다움도 그렇지만 음악적 음색이 배음을 넘어서면서 상호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악보로 하는 음악 예술 행위 중 가장 이상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이 음악은 음상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 음가의 시간성이 짧아서 현대적 개념의 특성인 심리적 만족도는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으므로 아름다움으로 대처 할 수 있으나 그 단편적인 음상을 해결함은 이 아름다움의 현대화를 꾀할 수 있는 길이다. 즉 악보 음악의 음상을 정리해서 그대로 확대하는 것이다. 바로 피거리즘의 현대화 작업을 전제로 좀 더 자세하게 접근해 보자. 악보 음악의 대상 악보는 시험이나 연주로 그동안 많이 대해서 악보만 보면 음악이 들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악보는 보기만 해도 음악이 들려야 한다. 그때 들려지는 음악은 물리적 가치로 보면 흐릿하면서도 작은 점이다. 그 점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그대로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연주행위를 위한 모든 집중은 머리 속에 미세한 점으로 들리는 음상이고 현대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음악이다. 그걸 실천하는 것이다. 1차 적으로 음상음악이 실천되면 그다음은 그 음악을 머리 속에서 꺼내 물리적인 음으로 확정하는 작업이다. 음상 음악 확립과 확대가 이 작업의 핵심이다. 즉 피거리즘(형상음악) 음악이 실천되면 확대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런 다음 전 단원이 그 음악을 노래하게 하면 된다.

역사적으로 합창 음악의 녹음이 제대로 드러난 건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로는 1930년 무렵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자료 비교가 있다. 합창 음악이 오케스트라 음악에 비해 아름다움이나 구조적 알참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건 오케스트라에 비해 합창 지휘자들의 음악적 아름다움의 실천 하려는 노력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어쩌면 그런 역사적 현실이 음악에서의 논리적 과학적 인지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오케스트라는 그만큼 과학적 근거가 충분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합창 지휘자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역사적인 시간) 성악가들의 가진 재능을 쓰는 것으로 만족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은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 경향이 있다. 그 결과가 4?전 쯤인가 베를린 필이 페트렌코를 맞이했고 뉴욕필이 얍 판 쯔베덴을 상임 지휘자로 맞아들인 것이다. 키릴 페트렌코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음정문제를 제기한게 원인이 됐고 쯔베덴은 철저한 트레이닝이 계기됐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문제보다 대체적인 지휘자들이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을 맡으면 문제를 파악해서 해결하고 더 발전적인 방향의 추구를 하는 게 아니라 단원들 실력을 믿으니까 그렇겠지만 발전적인 지향을 안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까지 음악 클리닉이 보편화가 안돼서 어떻게 해야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의 문제점을 정확히, 아니면 찾으려는, 발견하려는 시도를 안하는 게 문제다. 1950~60년대만 해도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은 역사가 발전의 길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역사적인 지휘자들을 통한 다양한 음악미의 경험이 표출력에 절대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해 보자. 오케스트라나 힙창단이 지휘자의 어떤 요구나 시도도 다 수용할 수 있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게 21세기 지휘자의 길이라고 한다면 너무 먼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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