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플라톤은 주저인「국가·정체(政體)」에서 쾌락만을 부추기는 나쁜 음악은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 대중을 선동할 위험이 있음에 대해 언급하며, 철인(위정자)들이 영혼을 정화하고 조화와 균형을 함양하는 좋은 음악을 가르쳐야 한다고 서술했다. 플라톤보다 앞선 삶을 살았던 공자도 음악을 통해 선을 실현하고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고 그의 사상을 정리한「예기」에서 주창하고 있다. 언급한 두 저서에서 동·서양의 사상가가 추구하는 핵심의 가치는‘정치와 예술’의 이상향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정치와 예술은 상생과 공존을 반복해 왔다. 종속적인 듯하면서도 본질이 달랐고, 상반된 듯 해도 지향점은 같았다. 결국 정치와 예술의 속성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역사의 여러 장면이 증언하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예술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역설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예술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보이거나 들리는 대부분의 예술 작품은, 예술가가 존재했던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배경이 작품에 투사됐거나 반영되어 창작된 결과물이다. 문학이 그런 도구로 사용됐고, 많은 회화에서 그렇게 표현됐으며, 수많은 곡이 그렇게 작곡되었다.
1957년「이방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가 그랬고,「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솔제니친이 그랬다.「영웅 교향곡」을 쓴 베토벤도 예외가 아니었다. 쇼팽이 작곡한「에튀드 혁명」은 그의 조국 폴란드가 러시아에 지배당한 1831년 11월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가장 혼돈스러운 정치적 현실에서 그 시대상을 표현한 교향곡을 열다섯 편이나 남겼다. 교황의 절대권력에 대항하며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프레스코화를 완성했던 미켈란젤로는 어땠는가. 피카소도 있다. 그의 대표작 <게르니카>는 1937년 스페인 내전 참상을 절규하듯 알린 역작이다. 나라 밖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시인 이상화는「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일제 강점기 암울했던 국내 정세에 피를 토했고, 윤동주와 이육사는 여러 편의 시를 통해 정치 현실을 한탄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품 대부분은 정치적 상황이 근간이 된 것들이다. 동백림사건으로 고국 땅에 묻히지 못한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도 같은 맥락에서 정치적 희생양이 된 예술가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이렇듯 많은 예술가들이 각자의 작품을 통해 그 시대 정치 상황을 묘사했고, 정치와 화합했거나 불화하며, 때론 격렬하게 저항해 온 역사가 바로 인류의 문화예술사이다. 그럼에도 국내 정치 상황은 늘 예술과 동떨어진 행보를 해왔다. 그게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라 항상 그래왔다. 언제나 예술은 뒷전이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에도 그랬고, 세계 경제 10위권인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정치가들은 예술과 정치가 모두 인간 활동의 가장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함이라는 근원적 사실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정치의 근본도 인간을 위함이고, 예술이 추구하는 바도 인간다운 삶의 구현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도 예술도 서로 조화하고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래야 좋은 정치가 꽃피어 난다. 정치가 아름답게 꽃 필 때 예술도 더불어 만개한다. 그런 시대를 과거 르네상스라 일컬었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K-컬쳐의 위상을 정치인들이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경제 회복만큼 중요한 것이 문화예술의 중흥이다. 좋은 정치를 실현하면 삶의 질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면 예술은 중흥하게 마련이다. 좋은 정치와 훌륭한 예술은 본질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 본질의 궁극점이 바로 인간이다. 정치가들이 제발 이 사실을 허투루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